분쟁 지역서 활동이 중국·인도 위기 촉발할 수 있어
“국경 안정화는 중국·인도에 우선적 과제”
최근 중국과 인도는 달라이 라마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88세의 고령인 그가 건강 문제로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달라이 라마의 건강이 중국과 인도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수립된 후 60여 년 동안 달라이 라마는 수십 개국을 방문했다. 종교 지도자를 비롯해 각국 정상과 왕족 등을 만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달 그는 인도 방문 일정을 네 차례 취소했다. 달라이 라마 측은 그가 “독감 때문에 일정을 취소한 것”이라며 “주치의들이 어떤 여행도 부담이 될 것이라 강력히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의 정기적 활동을 재개했다”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방문하기로 했던 지역에 중국과 인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주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인도 정부가 그의 방문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정을 연기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 측은 이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달라이 라마의 건강 이상설이든 인도 정부의 의도적 연기든, 그의 일정이 돌연 취소되는 것은 중국과 인도 사이의 지정학적 불안감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분쟁이 계속되는 국경 지역에서의 활동이 중국과 인도 관계에 새로운 위기를 야기할 수 있고, 중국이 달라이 라마 후계자를 직접 선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도와 중국은 더 이상의 갈등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20년 ‘몽둥이 충돌’ 이후 중국과 인도는 대부분의 국경 분쟁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완충지대를 마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경 안정화는 양국 정상에게도 우선적 과제”라고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인도와의 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인도가 미국과 더욱 긴밀한 군사적 유대를 맺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중국 관리들은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망 소식이 티베트와 인도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약화시키길 바라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도 국경 안정은 시급한 문제다. 인도의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수입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또 내년에 총선이 예정돼 있어 중국과의 충돌은 모디 총리의 지지율 하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 수립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국 관계 지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최근 10여 년 동안 수만 명 티베트인이 인도를 떠나기도 했다. 이에 이코노미스트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건강 우려와 티베트인들의 대의 도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