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다이아몬드’가 뜬다는데…진짜로 ‘진짜’ 같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3-11-0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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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클레이튼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가게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전시돼 있다. (UPI/연합뉴스)
‘변치 않는 영원함’을 상징하는 광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이아몬드인데요. 빛나는 아름다움과 희소성으로 ‘가장 비싼 보석’의 위치와 인기를 굳건히 지켜왔죠.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가 변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광산에서 채굴되는 천연 다이아몬드 대신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가 부상하면서부터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자란, 즉 인공적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다이아몬드입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깊은 지하에서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만들어지는데요. 이 과정을 재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끝에, 특수 기계와 공법으로 지상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챔버 안에서 다이아몬드 종자결정 주변에 순수한 흑연을 두고 섭씨 약 1500도의 높은 온도와 약 150만 lb/in2의 압력을 가하는 고압·고온(HPHT) 공법, 밀폐된 챔버에 탄소가 풍부한 가스와 종자결정을 넣고 약 800도로 가열, 가스가 종자결정에 달라붙어 다이아몬드 원자를 키우도록 하는 화학증착(CVD) 공법 등을 거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탄생하는데요. 1950년대부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 왔지만, 사실 이는 공업용이었습니다. 품질이 떨어지는 탓에 보석으로 사용하진 못했죠.

그러나 기술 발전에 따라 품질이 향상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와 함께 비교선상에 오르더니, 최근엔 인기도 심상치 않은 모습인데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에 비견되는 ‘품질’을 가지고 있을까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주목받는 이유부터 소비자들의 반응까지 살펴봤습니다.

▲2020년 9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에서 102캐럿의 다이아몬드가 공개됐다. (EPA/연합뉴스)
천연 다이아몬드와 품질 100% 일치…전문가도 맨눈으로 구별 못 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모조석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시뮬런트, 모이사나이트 등이 모조석인데요. 흔히 큐빅, 인조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것 역시 모조석에 속합니다. 탄소화합물을 투명하게 가공한 거라서, 겉모습만 언뜻 닮았을 뿐 다이아몬드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죠.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 씨앗을 인공적으로 키운 거라서 ‘가짜’는 아닙니다. 물리적·화학적·광학적으로 광산에서 캐낸 천연 다이아몬드와 100% 일치하죠. 이에 눈으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구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도 맨눈이나 확대경을 통해서는 이를 구별할 수 없고, 형광 장비를 통해서만 발광하는 색 차이를 통해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간 다이아몬드는 꾸준한 수요, 희소성 등으로 좋은 투자처이기도 했습니다. 2015년 틸뷔르흐 대학의 뤽 레네부그의 논문에 따르면 1999~2012년 사이 다이아몬드에 투자한 투자자는 연간 8%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됐는데요. 이는 주식이나 부동산의 수익률에 필적하는 수준이었죠.

다이아몬드는 금처럼 환금성이 높아 경제가 불안정할 때 수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호황기에는 보석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상승하죠. 즉, 다이아몬드는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수요가 꾸준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등장하고,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시장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다이아몬드 생산 업체인 드비어스는 가치가 비교적 높은 ‘셀렉트 등급’ 보석으로 가공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가격을 최근 1년 사이 40%가량 인하했습니다.

드비어스는 1980년대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80%를 점유했던 기업인데요. 이 드비어스조차 2018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사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확산을 주도한 것도 드비어스라고 할 수 있죠. 2020년에는 20만 캐럿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생산할 수 있는 기지를 구축하면서 본격적으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00년 5월 24일(현지시간) 시에라리온 와이이마의 코버트 광산에서 인부들이 땅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치 소비 트렌드와도 부합…환경오염·노동착취 논란 없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에코 다이아몬드’로도 불립니다. 친환경적이라는 건데요. 천연 다이아몬드 1캐럿을 채굴하려면 물 500ℓ가 필요하고 지면을 6.5t 깎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캐럿당 약 18.5ℓ 정도의 물을 소비하고요. 탄소 배출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윤리적 문제로도 지적받아왔습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주로 시에라리온, 보츠나와 등 아프리카 지역에 매립돼 있는데요. 일부 분쟁 지역에서는 어린아이들을 착취해 다이아몬드를 채굴했고, 이를 비싸게 팔면서 군사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피가 얼룩진 다이아몬드,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지칭하기도 하죠.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도 다이아몬드 산업이 가져온 시에라리온의 비극을 다룬 영화입니다.

윤리 소비와 친환경을 중시하는 가치소비 열풍에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도 추진력을 얻었습니다.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전문 애널리스트 폴 짐니스키에 따르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은 2016년 10억 달러(약 1조3450억 원)에서 2021년 20억 달러(약 2조6860억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2025년에는 39억 달러(약 5조237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죠.

보석업계 분석업체 에든 골란 다이아몬드 리서치앤데이터에 따르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판매 비중은 천연 다이아몬드 대비 2020년 2.4%에서 올해 9.3%까지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관심은 늘어날 전망입니다. 다이아몬드 전문기업 KDT다이아몬드가 모바일 사용자 설문 플랫폼 크라토스에 의뢰해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41.6%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내 소비자 10명 중 4명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다이아몬드를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셈이죠. 부정적인 답변은 22.5%로 나타났습니다.

성별로는 여성의 42.4%, 남성의 38.9%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연령별로는 40·50세대(44.2%)가 20·30세대(34.3%)에 비해 더 호의적이었는데요. 다이아몬드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47.7%)가 그렇지 않은 소비자(36.6%)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구매 의향이 더 높았습니다.

▲(사진제공=KDT다이아몬드)
국내 업체들도 주목…브랜드 사업 확장 움직임 커져

국내 업체들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사업에 나섰습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던 기업들도 이 움직임에 가세했죠.

국내 대표 다이아몬드 기업 삼신다이아몬드는 올해 친환경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브랜드 그린다이아를 론칭, 연말 공식 행사를 시작으로 백화점 입점, 단독 매장 오픈, 협업 등을 통해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천연 다이아몬드 전문 기업 루미너스도 2020년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루미너스랩을 론칭했는데요. 백화점 팝업 스토어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이르면 내년 직영 매장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2021년 국내 최초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에 성공한 KDT다이아몬드는 올해 3월 알로드를 론칭했는데요. 2일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에 정식 매장 그리너리 쇼룸을 열었습니다. 3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첫선을 보인 후 최근 신세계 백화점 본점 팝업 스토어를 연 데 이어 이번 롯데백화점 입점으로 브랜드 론칭 8개월 만에 국내 백화점 업계 빅3 모두 진출하는 데 성공했죠. 국내 기업 중에선 최초로 인도 현지에 생산 공장도 짓고 있습니다. 내년 3월 말 가동을 시작하면 첫해 3만6000캐럿, 이후 연간 10만 캐럿 이상의 캐파(생산능력)를 확보하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성장 추세인 만큼, 향후 국내에서도 관련 사업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국내 시장 규모는 올해 700억 정도로 아직 크진 않은 편이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약 40% 증가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주얼리 연구기관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의 향후 5~10년간 성장률을 17%~29%로 예측했으며, 2031년에 이르러서는 1860억 원에서 최대 248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죠.

이러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를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겠는데요. 업계에서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천연 다이아몬드가 서로 다른 시장을 형성해 각각 성장해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강성혁 KDT다이아몬드 실장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요 구매자들은 이미 천연 다이아몬드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안목이 있기에 어렵지 않게 구매에 나선다”며 “가성비와 낮은 가격을 강조하기보다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매력을 전달해야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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