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친구는 한계령 동쪽 편 주전골과 흘림골 사진을 보내주었고, 또 한 친구는 필례약수가 있는 한계령 서쪽 편 은비령의 단풍 사진을 보내주었다. 동쪽편 사진을 보내준 친구는 책상 앞에만 앉아있지 말고 불타는 가을도 구경하라고 짧은 안부 글을 함께 보내왔다.
한계령 서쪽 편 사진을 보내온 친구는 “여기 오니 은비령 걷기 축제를 하는데 은비령이 자네가 지은 이름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다시 주최 측의 안내글을 보내오면 신기해했다.
‘인제 천리길 걷기 행사의 첫 출발은 은비령길에서 시작한다. 은비령은 인제군과 양양군을 잇는 작은 샛길로서 필례령, 작은 한계령으로 불리웠는데,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1997년 현대문학상 대상 수상)의 무대로 지금은 실제 지명으로 굳어졌다.’
친구는 그동안 가까이 지내면서도 먹고사는 일에 바빠 친구의 작품까지는 몰랐던 듯했다. 소설 작품 속의 무대가 10년이고 20년이고 시간이 흘러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실제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는 게 친구만 신기한 게 아니라 나도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최근에는 그곳에 다리 하나를 놓으며 이름을 ‘은비령교’로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걷기 축제도 올해로 여섯 번째라고 했다. 초기에 몇 번 초청을 받았지만 작가가 작품을 쓴 다음 그런 자리에까지 나가는 게 너무 나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 매년 축제 기간을 피해 다른 독서그룹과 함께 당일이거나 일박이일 문학기행처럼 다녀왔다. 이렇게 함께 글을 쓰고 문학하는 사람들과는 다녀와도 아직 가족들과는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언제나 다음에 한번 같이 가지, 한 게 여태까지이다. 가족들도 작품으로 새로 지명이 생기고, 그런 이름의 길 위에서 걷기 축제를 한다는 걸 그저 신기해 할뿐이다.
친구들이 한계령과 은비령의 단풍 사진을 보내온 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편한 복장으로 대관령 옛길을 다녀왔다. 지금은 대관령 여러 산속을 터널로 뚫은 새 고속도로가 있고, 그전에는 한 굽이 두 굽이 돌아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예전 도로가 있다. 사람들은 아흔아홉 굽이의 예전 도로를 옛길이라고 부르는 줄 아는데 그건 ‘옛 도로’이지 ‘옛길’이 아니다.
옛길은 말 그대로 옛날 사람들이 어깨에 등짐을 지고, 또 괴나리봇짐을 지고, 신발도 지금과 같은 등산화나 운동화가 아니라 하루를 걸으면 다 닳고 마는 짚신이거나 그보다 좀 더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은 미투리를 신고 대관령을 가장 빠른 걸음으로 넘던 지름길이다.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걸었던 길이고, 송강 정철이 그 길을 넘어 관동별곡을 썼다. 계곡에 흐르는 물따라 걷는 길이라 당연히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지나갈 수 없다.
지금 옛도로라고 부르는 산허리 아흔아홉 굽이 길은 조선 중종시절 강원도 관찰사였던 고형산이 대관령 동쪽과 서쪽 지역의 물산을 좀 더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기 위해 사비로 닦은 길이다. 그 길이 조금씩 넓어지며 자동차 길이 되었다.
철마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며 사람들이 모여드는 길에도 이렇게 역사가 있고, 거기에 문학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친구도 나도 서로 다른 길로 단풍놀이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