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새 양곡법도 농업 위축"…野 "거부권 2회 어려울 것"
9일 본회의서 노봉·방송법 정면충돌…신사협정 깨질 듯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에 관한 법률안)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이어 한 차례 무산된 양곡관리법·간호법까지 드라이브를 걸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불가피해졌다. 국회 회의장 내 피켓시위·고성 등을 금한 여야 '신사 협정'도 민주당 입법 독주 국면에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우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6일 법안소위에서 새 양곡관리법 논의에 들어간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윤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 이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양곡관리법만 12개에 이른다.
쌀 생산량이 목표치의 3~5%를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규정한 양곡관리법은 정부여당이 일찌감치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규정하며 폐기 수순을 밟았다. 쌀 소비량과 무관하게 여분을 정부가 사야만 하는 것이 쌀 과잉 생산·쌀값 하락 요인 등이 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야권에서 새롭게 발의된 양곡관리법과 직전 법안의 주요 차이는 가격보장제에 있다. 정부의 초과생산 쌀 의무 매입 대신, 쌀 가격이 기준가격 이하가 됐을 때 차액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관계자는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수확기 쌀값 20만원(80kg 기준)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수확기가 보통 10월인데, 그때 쌀값이 목표에 미달하면 그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도록 하고 시장격리 의무화 내용은 뺀 것이 가장 큰 차이"라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새 법안도 농업의 시장기능을 위축시키는 본질은 같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해수위 소속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목표가 미달) 차액을 정부가 다 보전하는 것은 거부권으로 국가적 의사결정이 내려진 직전 법안과 내용이 비슷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농업은 농민 스스로 성공하게끔 해야지 자꾸 정부라는 구세주를 넣으려 하면 농민들이 의존하게 돼 나중에 폭삭 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쌀은 (재고가)계속 누적되는데 정부 재정이 취약하면 쌀값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쌀 20만원선을 보장하면서 전략작물 전환 기반도 만드는 것이 정부 목표"라며 "법안을 낸 의원들이 다 쌀농사 하는 지역구라 사정은 이해되지만 이걸 제도적으로 하면 농민들에게 득이 없다. 법안은 심의하되 상정은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승남 민주당 의원은 "쌀은 국가의 기간 농산물로 다른 농산물과 다르다. 쌀값을 높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현상 유지, 안정화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타 작물 재배를 낮추고 쌀 생산량을 늘리면 쌀값이 떨어진다. 물가잡기 차원에서 쌀값을 떨어트리려고 하면 마음대로 떨어트릴 수 있는 것이다. 농민 생존권 관련 내용을 법적으로 제도화하겠다는 건데 왜 반대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법도 예열 단계에 있다. 앞서 민주당은 7월 의원총회에서 간호법을 재추진하기로 총의를 모았다. 5월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로 국회 통과가 무산된 지 2개월 만이다. 당시 윤 대통령이 거부권 배경으로 거론한 된 '유관 직역 간 갈등'을 낮추는 방향으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물론 역할·업무 등의 규정을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쟁점이 된 것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간호법 제1조다. '지역사회' 문구가 의사의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의사단체가 반발하면서다.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특성화고 졸업자·고교 졸업자와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제한한 제5조도 간호조무사 단체가 '학력 상한제'라고 반발하면서 직역 갈등이 불거졌다. 발의를 앞둔 수정안에는 이러한 쟁점을 보완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양곡관리법·간호법도 민주당 주도로 국회 재통과가 가능하지만, 다시 거부권에 막힐 가능성이 높다. 이종훈 명지대 연구교수는 "(민주당이) 민생을 챙기려고 애쓰고 있는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못한다는 공격 요소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일종의 물량공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당장의 뇌관은 9일 본회의 상정이 확정적인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이다. 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국민의힘은 초·재선 60명 전원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불을 놓을 계획이다.
168석 민주당의 법안 처리를 막을 수는 없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법안의 부당함을 국민에 최대한 알리겠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정의당 등 범야 공조로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시작 후 24시간이 지나면 재적의원 5분의 3(179명) 이상 동의로 강제 중단이 가능하다. 9일부터 4개 법안에 이런 절차가 적용될 경우 이르면 13일 법안 처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지난달 24일 여야가 정쟁 방지를 위해 회의장 내 고성·야유 등을 하지 않기로 한 합의도 이 과정에서 무산될 공산이 크다.
우선 여당은 야당의 입법 독주에 정제된 필리버스터로 차분하게 대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최소 5일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치 국면 속에서 감정 싸움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의원들이 돌발 행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필리버스터를 차분하게 하면 된다는 입장"이라며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려 국민께서 판단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양곡법·간호법 재추진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다시 행사하도록 하는 전략이 민주당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당 관계자는 "신사 협정이 입법 독주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강제 종결돼도) 필리버스터 시간은 충분하다. 민주당의 부당한 처사를 최대한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필리버스터를 계속 놔둘 수 없으니 해제하는 방법이 별도로 국회법에 있다. 국회법에 규정된 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