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후 기업 가격 대폭 인상 부작용 초래"
정부가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민감 품목을 중점 관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한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지철호 전 부위원장이 "사실상 가격 통제에 나서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고, 항후 기업들이 한꺼번에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사)공정거래실천모임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정부가 가격 인하를 강제한다거나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제품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떨어지고, 생산량이 조절돼 물가가 균형을 이루는 시장경제 원리를 역행한다는 것이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모든 부처가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하고, 각 부처 차관이 소관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지는 물가안정책임관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과자·라면·설탕·아이스크림·우유·커피·빵 등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은 7개 품목 물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TF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각 부처 고위 관료들은 앞다퉈 마트·시장·주유소 등을 찾아 가격 점검에 나서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10월부터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정부의 예상과 달리 국제유가 상승 추세 속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등 대외여건 악화와 이상저온에 따른 농산물 생산성 저하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다시 치솟은 데 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3.8% 상승해 3개월째 3%대의 오름세가 확대됐다. 정부는 물가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더뎌질 수 있다고 보고 물가 안정화를 위해 철저한 관리체계를 구축해 대응에 나선다는 취지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가격 통계에 나서겠다는 행보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 전 부위원장은 "정부가 인하 수준을 일정 수준으로 인하하라는 것은 관제 카르텔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 누적된다면 기업들이 나중에 억눌린 가격의 대폭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최근 하이트진로는 대표 브랜드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출고가를 6.95%, 켈리와 테라 출고가를 이달 9일부터 평균 6.8% 인상하기로 했다.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요청에 올초 가격 인상을 유보한 하이트진로가 늘어나는 원료인상 부담을 못이겨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존중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작년 6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 “윤석열 정부에서는 적어도 물가를 직접 통제하는 일은 시장경제나 자유 차원에서 봤을 때 하지 말자는 생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