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임원 인사
국내 대기업의 임원 인사는 11월과 12월에 집중된다. 그러나 사업 현황이 좋지 못하거나 실적 및 사업체질 개선 등 위기의식 조성을 위해 임원 인사를 서두른 기업은 이미 9월과 10월 해당 인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도 사업계획 재점검에 돌입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글로벌, 혁신,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로 임원 인사 준비에 바쁘다.
올해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실적 부진에 시달린 기업들이 많기에 기존 임원의 대폭 교체가 예상된다는 것이 재계와 언론의 평가다. 유통, 전자, IT업계뿐 아니라 콘텐츠 분야까지 전체적으로 올해 부침을 겪은 기업들이 유독 많았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수출통제 이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사안은 내내 끊이지 않았다.
인사평가 시즌이 다가올수록 임원들의 마음이 더 초조한 이유다. 필자가 알고 지낸 임원 중 일부는 임원 인사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외부와 약속도 잡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실적 저조로 인해 마음을 비우고 또 다른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도 있다.
임원 인사를 앞두고 대기업 임원들이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이유는 하나로 요약된다.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쉽게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대기업의 모 임원은 지나치게 자신의 스타성을 언론 인터뷰에서 과시했다가 미운 털이 박혀 좌천되었고 모 임원은 주력 계열사의 CEO로 거론되었다가 하루아침에 옷을 벗기도 했다.
공정한 임원 인사를 위해 인사팀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1년 동안 기존 임원의 실적과 세평을 점검하고 그룹 CEO에게 신중히 보고하지만 임원 인사의 방향성이 그때 그때 변화됨에 따라 그 결과가 위의 사례처럼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다 보니 국내 대기업 임원들도 장기적 비전과 투자보다 눈치 보기와 단기성과에만 올인한다.
장기적 방향성을 중시하는 임원 인사로 나아가야
새롭게 기업 임원이 되면 기존 임원들은 꼭 세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첫째, 회장의 견해에 절대로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 둘째, 인사팀이 수시로 평가와 리더십을 점검하니 인사팀장과 거리를 두지 말고 친근하게 지낼 것. 셋째, 장기 비전과 투자보다 단기성과가 중요하니 무조건 단기성과에 집중할 것을 가르친다.
결국,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눈치를 잘 살피고 단기성과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기존 임원들이 알려주는 셈이다. 임원들이 저자세로 급변하다 보니 수평적인 토론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은 임원이 새가슴이 되었다며 불평한다. 그 결과, 임원과 직원의 성과를 바라보는 견해 차이는 벌어지고 그 간극은 메우기 어려워진다.
2013년 세계적 학술지인 아카데미 매니지먼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메릴랜드 대학의 마틴(Martin) 교수는 단기성과를 향상하는 데 지시적 리더십은 가장 탁월하지만 해당 리더십은 장기성과에는 오히려 독이 되기에 임원이 되면 단기성과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권한위임과 수평적 문화조성, 통찰력을 함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확실한 환경이 발생할수록 단기성과는 흔들리기 쉽다. 임원들을 1년 단위의 성과로 문책할수록 임원의 소신과 통찰력이 발휘되기는커녕 위축된 임시직원들의 모습만 노출될 수 있다. 매출과 수익 등 정량적 성과에 연연하다 보니 임원들이 보유한 사업가적 역량, 기업가적 지혜와 경험이 축적되거나 활용되는 일 역시 극히 드물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임원 인사의 문제를 그러려니 넘기지 말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인사가 불확실해질수록 해당 조직에서 가장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제일 먼저 이탈한다. 이제라도 임원을 단기성과라는 틀로 바라보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그들의 기업가적 역량을 살펴보는데 무게중심을 두는 역량평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