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내년 마약 수사 관련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제동을 걸 공산이 크다고 한다. 예결위의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는 마약범죄 대처를 위해 올해 대비 34억5500만 원 증액한 83억1200만 원을 편성했다. 국회 반응은 껄끄럽다. 예산안 사전검토에 들어간 예결위 수석전문위원실은 예산 요구액이 과다하다며 부정적 의견을 냈다.
여야와 예결위, 개별 의원 견해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예산안의 첫 관문인 사전검토 단계에서부터 적신호가 켜졌으니 예사롭지 않다. 수석전문위원실은 연도별 마약류사범 단속 현황을 들어 2019년과 2021년은 1만6000명대이고 2020년과 2022년은 1만8000명대에 불과하다고 토를 달았다고 한다. 예산 과잉청구라는 것이다. 근시안적이다.
마약 문제는 전염병과 유사하다. 전파 경로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느냐 여부가 마약 퇴치 전쟁의 승부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마약에 느슨하게 대처하다 근래 광풍에 휘말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마약은 이미 대한민국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공공연히 ‘마약 음료’를 돌린 사건마저 발생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마약류 및 환각물질 사범 건수는 2만4000여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3% 증가했다. 강력사범(8.4%), 성폭력 사범(5.3%) 증가율을 한참 능가하는 급증세다. 마약류 정식재판 건수는 올해 약 7700건으로 전년 대비 27%가량 늘었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대도시가 마약 판매의 새 온상으로 떠오르는 현실도 우려를 더한다. 관세청이 1~9월 반입단계에서 적발한 마약류(493㎏)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국내에서 흔히 거래되는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의 g당 가격은 263.4달러로 2021년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미얀마(12.6달러), 홍콩(67.3달러), 중국(66.6달러)보다 높다. 마약상을 불러모으는 암시장 구조가 짜이고 있는 격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올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마약 밀수가 급증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은 우연의 소치가 아니다.
마약 유통 통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가면서 10~20대 사범이 급증하는 것도 묵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필로폰을 투약한 청소년의 뇌 손상 위험은 성인의 7배에 달한다. 대검에 따르면 10대 마약사범은 2018년 143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4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예산을 틀어쥔 국회가 단속현황판의 숫자만 보고 마약 범죄의 폭발성을 경시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책임하다. 그러잖아도 원내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인사들이 걸핏하면 “마약 수사는 정권의 기획”이란 인식을 보여 다수 국민이 혀를 차고 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더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