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려서 해결될 일인가

입력 2023-1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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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가 어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일반 예상대로 대기업이 ‘독박’을 쓴 기형적 인상안이다. 오늘부터 산업용 대용량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kWh)당 평균 10.6원 오르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갑) 요금은 동결됐다. 가정용과 일반용(공공·상업) 요금도 종전대로 유지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용량 소비자는 산업용 고객 약 44만 호 중 약 4만2000호다. 전체 고객을 모집단으로 잡으면 0.2%에 그친다. 그러나 전력 사용량은 26만7719기가와트시(GWh)로, 총사용량(54만7933GWh)의 절반(48.9%) 가까이 차지한다. 해당 기업들의 월평균 전기요금은 4200만 원이다. 이번 인상으로 기업당 월평균 전기요금 부담이 200만 원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한전은 “원가 상승요인을 반영하되 물가, 서민경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했다. 추가 인상의 여지도 남겼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정용·일반용 가격을 건드릴 리는 없다. 원가 압박 등에 못 이겨 추가 인상을 해도 또 대기업을 괴롭히는 선에 그칠 것이다.

정부와 한전은 어느 각도로 봐도 ‘땜질 처방’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번도 그렇고, 다음번도 그럴 것이다. 배경은 이해가 가지만 도저히 찬성할 수는 없는 단세포적 선택이다. 그 무엇보다 한계 상황을 넘은 한전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국가 에너지 대계도 중장기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한전 누적 적자는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약 47조 원에 이른다. 부채는 상반기 기준 201조 원에 달했다. 전력 구매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높은 역마진 현상이 장기간 계속된 탓이다. 상품을 원가보다 싸게 파는 가게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철칙이다. 구멍가게만이 아니다. 거대 에너지 공기업도 시장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한전은 부실 덩어리다. 하루 이자 비용만 해도 약 118억 원에 달한다.

근본 책임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폭주와 정치 요금에 있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반시장적 구조 속에서 한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도 전임 정부는 5년 동안 전기요금을 단 한 차례 올리고 말았다. 전임 정부 스스로 세운 원가연계형 요금제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전임자 탓만 할 수는 없다. 국민 이해와 협조를 구해 과감히 전기요금 현실화에 나서는 대신 땜질 처방으로 시간 낭비만 거듭한 허물이 크다.

더 늦기 전에 정치 요금의 잔재를 씻을 연료비 연동제를 확립하고, 독립위원회가 객관적으로 요금을 조율할 수 있게 제도를 손봐야 한다. 에너지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적이고 우리 기술 경쟁력도 탁월한 원자력발전을 중심으로 에너지 대계를 세밀히 재정립하는 과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둘러야 한다. 시간은 더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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