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제로성장’ 한국 경제 구조개혁을

입력 2023-1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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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요법으로는 저성장 해결 못해
반도체·중국 의존 줄일 산업재편 절실
고령화 따른 생산성 하락 극복해야

지난달 26일 한국은행은 금년 3분기 경제성장률이 0.6%(전기대비)를 기록하였다고 발표했다. 1분기 0.3%, 2분기 0.6%에 이은 연속 3분기 0%대 성장으로 연간 성장률도 1.4%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OECD가 추정한 잠재성장률 또한 2001년 5.4%를 기록한 이래 올해 1.9%, 내년 1.7%로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성장률이 1%대로 낮아진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더욱 암담한 현실은 이러한 저성장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점이다. 단기적인 충격조치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러다가 20세기 초까지 모범적인 선진국으로 불리다 주기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경험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꼴이 나지 않을까 두렵다. 자원부국으로 원유매장량 1위를 자랑하던 베네수엘라의 추락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진단하는 것은 처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개혁조치는 구조적 문제가 외부적 요인이냐 내부적 요인이냐에 따라 통제변수로서 실현 가능한 조치가 있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이 경우 기껏해야 위험을 분산하여 충격을 완화하는 조치가 가능하다-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외부적 요인부터 보면 우리 경제가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두 요인의 의존도가 높은 구조라는 점이다. 우리 수출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와 낸드에 의존하고 있는 산업 특성상 주어진 가격사이클을 통제하기 어려워 시장가격의 등락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AI와 시스템반도체 등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생산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차전지 등 신규 성장산업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을 다변화하여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중국변수(우리 수출의 25% 내외 차지) 또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기대했던 중국시장이 미중 간 갈등과 부동산시장 붕괴, 부품의 자체 생산이라는 변수에 막혀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 대체 생산기지 제공과 함께 첨단 및 하이엔드시장 공략 등 중국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통제가능한 변수라는 점에서 내부적인 구조문제에는 희망이 있다. OECD와 맥킨지 등이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하락, 노동, 교육 및 연금구조 개혁의 지체다.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고령화와 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급히 대안 마련이 필요한 사안이다.

해외 고급 및 산업인력의 국내 정착 유도와 공장자동화, 그리고 고령인구 맞춤형 생산현장의 조정(예를 들어 BMW의 고령자 포용적인 공장설계) 및 고령인구의 전문성 활용(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MHI Executive Expert의 예) 방안의 마련을 추천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막기 위해 생산성에 따른 보상시스템의 정착과 여성인력의 경력 단절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한 정부의 보상 등 제도마련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본다.

교육제도는 인적자본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분야다. 성장산업에 대한 고급인력 공급을 위한 대학 및 학과별 정원의 탄력적 조정과 함께 이제는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을 마련하여 퍼스트 무버를 육성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이 시급한 상황이다.

연금의 경우 기득권적인 성격(entitlements)이 있어 현행 보상기준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고 선진국으로서 바람직한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기여분의 인상과 효과적인 운영을 통하여 인상분 이상의 보상을 나중에 약속해줄 수 있도록 운영시스템의 효율화가 필요하다.

소득양극화시대에 고소득자는 많이 내고 또 낸 만큼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 양립적인(incentive compatible) 제도의 개편을 통하여 연금의 분배적 기능 제고와 기금 고갈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개혁과정에는 많은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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