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내년에 차환해야 하는 선순위 무보증 일반 회사채 만기 물량은 총 88조2840억 원으로 올해(78조6190억 원)보다 12.3% 늘어났다. 만기액은 1월과 2월에 각각 7조 원과 9조 원대에서 3월 6조 원대로 내리지만, 4월부터 다시 12조 원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분기별로 보면 2분기 만기액만 28조 원으로 연간 최대 물량이다. 특히 A급 이하 기업들의 물량이 두드러진다. 연초 10조6480억 원이었던 A급 이하 물량은 2분기 11조3160억 원, 3분기 12조560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
채권시장에서 A 이하 기업들의 회사채 차환 난이도는 높다. A등급에서 자칫 삐끗해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는 순간 시장에서 자금조달 난이도가 급격히 오르고, 차환을 통해 회사채 만기에 대응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상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 기업들은 새로 회사채 물량을 발행하는 ‘차환’ 방식을 통해 자금을 갚는다. 그러나 신용도 하락 또는 발행금리 급등으로 회사채 발행 환경이 원활하지 못하면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종료에도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조달하는 조달금리는 내리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금리인상 종료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국고채 3년물은 지난달 연 4.015%에서 이달 초 연 3.877%로 3.44%(14bp) 떨어졌지만, 같은기간 회사채 AA- 3년물 금리의 감소 폭은 1.56%(7bp)에 그쳐 4%대 후반을 유지 중이다.
기업 조달금리가 높은 이유로는 기업 실적 악화가 꼽힌다. 대내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가시화하면 재무구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신용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민평 대비 낮은 금리로 조달하는 자금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브릿지론에서 본 PF로 넘어가지 못하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가 지속하고, 은행채 발행 제한 폐지로 은행채와 공사채 등 우량물 발행이 늘어나면서 기업 회사채 투자 심리가 한껏 더 위축됐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보는 기업들의 실적이 여전히 좋지 못하다. 부동산 PF 리스크도 있어, 자금조달에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최근 은행들도 리스크 관리와 기업 대출로 인한 정치권의 이자공격 때문에 대출을 안 해주려는 분위기라서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을 뜻하는 신용 스프레드는 점차 확대 중이다. 지난달 초 78bp였던 신용스프레드는 이날 약 85bp까지 늘어났다.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 AA- 3년물 간의 차이인 신용스프레드가 벌어진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길이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회사채는 국고채보다 신용도가 낮아 더 높은 이자를 얹어줘야 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조달금리가 내리기를 기다려온 기업들도 더이상 발행을 미룰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대형증권사 DCM(채권발행시장) 임원은 “내년 상반기가 고비”라며 “만기물량도 많고 금리 안정을 예상하면서 발행을 미뤄온 물량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또 금리를 올리는 요인이다. 부동산 PF 이벤트까지 나오면 스프레드는 더 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