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전망’을 고수하던 KDI가 끝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던(올해 1.5→1.4%) 날, 한국은행도 추가 하향 조정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경제분야 인사가 한 말이다.
이달 30일 한국은행이 숫자(경제전망)를 발표한다. 앞서 8월에 내놓은 숫자는 올해 성장률 1.4%, 내년 2.2%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전망치와 같다. 한국은행 전망이 국제기관 예측과 맞았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당시 IMF가 발표한 내년 성장률 2.2%는 7월 전망치였던 2.4%에서 낮춘 것이다.
다수의 민간 연구기관은 경제성장률을 올해 1.3%, 내년 2.1%로 각각 예상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숫자는 더 박하다. S&P는 1.1%, 피치는 자칫 ‘0%대’로 떨어질 수도 있는 1.0%를 매겼다. 0%대 소수점 둘째 자리를 반올림해 ‘1.0%’인지, 아니면 액면 그대로 1.0%라는 것인지 리포트(GDP growth to slow to 1.0% in 2023)에 상세 서술하진 않았다. 어찌됐든 ‘1% 턱걸이’를 전망한 것이다.
한국은행 차례가 돌아왔다. 많은 연구기관들이 예측한 수준으로 전망치를 낮출지 관심사다. 특히 내년 숫자도 꺼내야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숫자에 대한 시장의 민감도는 천차만별이다. 총재의 한마디에 채권 금리가 들썩거리다 가도, 한국은행의 숫자는 정부나 국책연구기관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냉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심드렁해도 중앙은행 발표를 아예 모르쇠할 수는 없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영세기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중앙은행이 국내 경제 체력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내년 기업 경영 전략의 밑그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숫자에는 거품이 있으면 안 된다. 경제 현실을 직시한 분석이 지표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주변의 입김과 개입은 없어야 한다. 하물며 누구나 즐겨 먹는 시중에 판매하는 핫도그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한 봉지 개수를 5개에서 4개로 줄이는 꼼수(슈링크플레이션 현상)를 두고 ‘물가에는 지장이 없다’는 달콤한 해석을 하게끔 조장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예상치 못하게 발생했을 때 한국은행의 주요 관심사는 국제유가였다. 당초 예상했던 올해 평균 국제유가(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2달러, 내년 83달러(상반기 84달러·하반기 82달러)를 웃돌면 셈법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흐른 현재 국제유가는 오히려 배럴당 70달러대 후반~80달러대 초반 수준이다. 확전 시 배럴당 100달러는 물론 15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 시나리오에 어떤 내용을 담을까. ‘1% 턱걸이’ 전망을 했던 피치는 한국 신용등급의 부정적인 요인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GDP 대비 정부부채가 증가하는 경우, 주택시장이나 노동시장의 구조적 악화로 가계부채 상환능력이 낮아져 금융부문이 곤경에 빠질 경우 등을 꼽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로 인한 경제지표 악화도 부정적 요인으로 짚었다.
2023년 연말, 경제 현실을 직시한 한국은행의 숫자에 여느 때보다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