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주·대구에 이어 이번엔 제주를 끌어안았다.
인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원 일부는 14일 제주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에 들러 참배했다.
검정 양복에 검정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인 위원장은 왼쪽 가슴팍에 빨간 동백꽃 브로치를 단 채 혁신위원들과 함께 천천히 추모탑으로 향했다. 추모탑 참배는 지지자나 지켜보는 시민 없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헌화 및 분향을 마친 인 위원장은 뒤쪽에 마련된 위패봉안실로 들어가 ‘희생을 잊지 안겄습니다(않겠습니다). 평화의 제주를 기원합니다!’라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전라남도 순천 출신인 인 위원장은 “여수·순천 10·19 사건을 많이 들었다. 제주 4·3 하고 연관이 돼 있는 일이란 걸 아랫목에서 많은 얘기를 듣고 교훈을 받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인 위원장은 이번 제주행이 ‘통합’과 ‘호남 끌어안기’의 연장선상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10일에도 그는 “여수·순천 10·19 (사건이) 1948년도에 있었다. 제주 4·3과 다 연관이 돼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념과 사상을 떠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된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걸 다 품고, 희생당하는 일이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잘해야 할 것 같단 생각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여수·순천 10·19 일도 그렇고 제주도는 물론이고, 군인하고 경찰이 명령에 복종하면서 희생된 분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기억해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 4·3을 아껴주시고 챙겨주시길 바란다”며 자신에게 다가온 박영수 제주4·3 희생자유족회 감사에게 “감동 받았다. 잘하겠다”며 1분가량 한 자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인 위원장은 “4‧3기념일은 조금 격이 낮은 추모일”이란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김재원 전 최고위원 징계 해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통합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했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분(김 전 최고위원)이 여러 번 자기 잘못을 고백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부족하지만 고백했기 때문에,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시는 그런 발언들을 하지 않도록 제가 지켜보겠다”고 부연했다.
앞서 혁신위는 1호 혁신안으로 제주 4‧3 관련 실언을 한 김 전 최고위원의 징계(당원권 정지 1년)를 포함해 당에 대사면(일괄 징계 취소)을 건의한 바 있다. 그로 인해 “도민의 공분을 산 인사가 면죄부를 받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혁신위는 이날 제주도 당사를 찾아 당직자들의 의견도 청취했다.
인 위원장은 제주시 연동 제주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제주도당 당직자 간담회’에서 “이곳에서 출마하시는 분들도 아주 공평하고(할 수 있도록), 하나의 오점이 없는 잔치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며 “정치의 기적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걸 현장에 와서 느꼈다”면서 “제가 서울하고 수도권에 의원 수가 많아서 (거기에) 집중을 하고, 말을 많이 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도도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허용진 제주도당위원장은 제주 지역 청년 비례대표 배정과 이른바 ‘스타 장관’의 제주 출마 등을 인 위원장에게 요청했다.
허 위원장은 “위원장님께서 ‘정치의 기적’을 말했다. 정치의 기적을 이루려면 제주도에서 국회의원 1석을 마련하는 것만이 출발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며 “인 위원장이 화두로 꺼낸 청년 비례대표를 제주도에 꼭 하나 줄 수 있도록 당규에 못을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에 인 위원장은 “아주 신선한 발언이다. 단, 저는 선거대책위원장도 아니”라면서 “그런 종류의 아주 신선한 제안들을 우리 당에서 좀 수용할 수 있도록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허 위원장은 또 “제주도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선 제2공항이 절실히 필요하다. 제2공항과 관련된 주무장관이 국회의원 출마에 나선다면 이거보다 더 큰 명분이 어디 있겠냐”며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제주에 출마한다고 해서) 그분을 죽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인 위원장은 “결단은 각 본인이 결단해줘야 한다”며 “하신 말씀을 서울에 와서 장관님께도 다 전달하겠다”며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이처럼 통합 행보를 이어가는 한편, 인 위원장은 일각에서 제기된 ‘혁신위 조기 해체설’, ‘중진 불출마 명단 작성’ 등은 단호하게 부인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가 중진·친윤(친윤석열) 의원 등 총선 불출마 및 험지 출마 권고 대상을 특정해 명단을 작성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무슨 리스트(명단)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앞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혁신위는 11일 진행된 화상회의에서 ‘중진 불출마’ 권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당내 주류 의원들의 이름을 공개 거론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알려졌다. 지도부, 영남·충청권 중진 등으로 대상·규모도 구체적으로 오르내렸다.
‘혁신위 조기 해체설’도 반박했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혁신위 초창기에) 그런 의견을 가진 위원님들이 분명히 있었다”면서도 “현재 일자(시점)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은 “(혁신위 출범 초창기 때의) 분위기는 ‘모든 혁신위는 다 잘 안 된다’ ‘모든 혁신위는 결론 없이 끝날 것이다’였다”면서 “그래서 그때 ‘이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굳이 우리가 혁신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맥락이었다”고 발언이 나온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전날(13일) 일부 언론을 통해 ‘중진 불출마’ 등 권고 사항이 당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혁신위가 조기 해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도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