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시행 앞두고 사재기
“구세대 장비로도 첨단 제품 양산 가능”
1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3분기 반도체 및 집적회로(IC) 제조장비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90% 급증한 634억 위안(약 11조 5122억 원)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네덜란드로부터의 수입 규모가 6.1배나 늘었고, 품목별로는 미세 회로를 새겨 넣을 때 쓰는 노광장비 수입이 3.9배 증가했다.
노광장비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으로 극자외선(EUV) 등 빛을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에 비춰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을 때 쓴다. 최근 미세 공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최첨단 노광장비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노광장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회사 네덜란드 ASML로부터 이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이처럼 네덜란드로부터 노광장비를 대거 사재기하는 배경에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수출 규제가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발맞춰 올해 9월부터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등 일부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를 수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올해 연말까지는 수출 관리 강화 조치에 대한 유예기간을 뒀다.
장비 발주로부터 납품까지는 6개월~1년이 소요된다. 도카이도쿄증권의 이시노 마사히코 선임 애널리스트는 “중국 기업들이 네덜란드에서 장비가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을 내다보고 실수요와 무관하게 서둘러 주문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입된 장비가 첨단 반도체 제조로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속에서도 포위망의 사각지대를 파고들며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화웨이테크놀로지가 8월 출시한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에는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 SMIC가 개발한 7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반도체 칩이 탑재됐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SMIC의 기술력이 발전해 구세대 라인에서 사용하던 제조 장비를 활용해도 첨단 제품을 양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네덜란드가 수출을 제한하는 것은 최첨단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노광장비와 준첨단 노광장비 일부에 불과하다”며 “중국이 비첨단 노광장비를 추가로 사들이면 SMIC의 7나노 제품의 잠재적 생산능력이 더 증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