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대립 인정…적과의 동침 추구
21개국이 참여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미국에서 막이 올랐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APEC 회담 중 개최되는 미중 정상회담에 집중되며 미중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하고 있다. 또한 암묵적인 중국 견제 성격의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정상회의가 미국시간 15일 미중 정상회담 다음날인 16일 개최되면서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 전형적인 ‘어공’과 ‘늘공’의 신경전이었다. 조급한 미국과 느긋한 중국 간 밀당이 진행되었고, 양국의 외교 및 경제금융 수장이 사전 조율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다. 최근 CNN·CBS·뉴욕타임스 등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바이든과 트럼프 간 리턴매치 지지율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열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당연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바이든 리더십이 대내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데 지금은 반대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내년 1·2분기 미국 경제지표 개선과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7월 재닛 옐런 재무장관, 9월 지나 레몬드 상무장관의 방중과 최근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된 미중 고위급 만남도 그만큼 미국이 조급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겉으로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중국 반도체, AI 등 첨단산업 제재와 수출제재 강화로 성장동력 약화와 점차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성장 유지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회담 이후 1년 만에 다시 재회하는 이번 정상회담이 막혀 있는 미중 관계 해빙의 분수령이 될 것인가? 결론적으로 시장에서 기대하는 획기적인 관계 변화는 없겠지만 양국 간 긴장된 상황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소통을 강화하는 차원의 합의점은 도출될 것이다. 3시간이 넘는 발리 회담에서 양국은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을 채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변화된 관계 설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경쟁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갈등은 가능한 피하는 접근 방식으로 총론에는 합의하지만 각론에서는 여전히 양국 간 입장차가 확연히 들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아젠다와 비중은 크게 글로벌 이슈(10%)-지역안보(30%)-양자현안 이슈(60%)의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후변화 및 글로벌 경제위기대응 등 이슈에 대한 협력강화로 이는 합의점 도출이 쉬운 부분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중동전쟁과 러시아-북한 간 무기거래 등 지역안보 이슈들에 대한 중국 역할론이다.
미국은 확전될 양상을 보이고 있는 중동전쟁에 이란이 참전하지 않도록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도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간여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북한 간 무기거래 및 북한 핵위협 이슈에 대해 중국은 원론적인 접근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산적해 있는 타이완 문제, 무역과 기술패권 다툼 등 양자 간 이슈가 될 것이다. 미중 간 충돌하고 있는 쟁점은 크게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영역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우선 미국의 중국첨단가술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중국의 관계변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속되는 전형적인 디커플링 영역이다.
미국은 중국첨단산업 굴기가 자국 국가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글로벌 패권의 지형이 변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첨단기술과 반도체 장비의 수출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미중 정상회담 아젠다 조율을 위해 양국 간 외교 및 재무장관만 만났고, 첨단기술제재를 담당하는 상무장관 간 만남이 없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한편, 미국의 대중국 고율관세, 타이완 이슈 등 디리스킹 영역은 상호 합의점에 도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미국은 고율관세 완화카드를 제시하며, 중국이 미국국채를 매입해 주기를 우회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추가적인 국채발행을 통해 대규모 부양책을 집행해야 하는데, 일본에 이어 2위의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의 협조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18년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미국국채를 계속해서 매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2019년 1조 700억 달러에서 올해 4월 기준 약 8600억 달러로 줄어든 상태다. 중국산 제품의 고율관세 완화는 미국 입장에서는 물가완화, 중국 입장에서는 수출증가의 상호 윈윈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 경기침체와 해외 수요부진으로 중국의 대외수출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이라 중국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지난 10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6.4% 감소한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로 경제를 지탱해야 하는 중국으로선 미국의 고율관세 완화는 경제회복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점차 줄여왔던 미국산 대두수입을 정상회담에 맞춰 총 300만t 이상 구매하기로 한 것도 미중 관계 안정화를 위한 중국의 정치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타이완 해협과 남중국해 등 지역에서 일어날 우발적 군사행동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상호 소통강화를 위한 협의도 디리스킹의 영역이다.
미국은 중국과 1년 이상 단절된 미중 군사통신 채널을 복원시키고자 한다. 타이완 해협의 긴장국면이 자칫 국지전으로 이어질 경우 상호 안보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에 중국은 1년 전 발리 회담에서 논의된 이른바, ‘5불 정책(신냉전 불추구·중국체제변경 불추구·동맹강화를 통한 반중국 불추구·타이완독립 불지지·중국과의 충돌 불원)’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영역의 공존과 전략적 적과의 동침에 주목해야 한다. 첨단기술 국제표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경쟁과 대립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구조화·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양국도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국익을 위한 새로운 방향의 전략적 적과의 동침을 하는 것이다. 전략적 경쟁자이자 경쟁적 협력자인 양국관계에서 우리의 유연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 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