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회주의적 발상이 폐해 불러
대학선발권 돌려줘야 교육 정상화
약 50만 명의 수험생이 치른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별 탈(?) 없이 끝났다. 하지만 온 국민이 초긴장 속에 총동원되는 이 시험을 왜 유지해야 하는지 엄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폐지되어야 할 국가독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첫째, 수능은 탄생에서부터 절차적 문제를 지닌다. 현행 수능시험은 1968년 12월 19일 시행된 예비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예비고사는 69학번에서 73학번까지는 자격고사로 유지되다가 74학번부터 본고사에 반영되면서 그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 신군부의 이른바 ‘7·30 교육개혁’에 의하여 ‘본고사’가 폐지되고 그 자리에 ‘예비고사’가 대학입학 전형의 중심이 되었다. 본고사를 폐지하여 81학번 입시부터 ‘학력고사’로 이어지다가 94학번이 치른 1993년부터는 현재의 수능시험으로 이르렀다. 대학의 선발권을 박탈해간 비민주적 ‘쿠데타’가 오늘의 수능을 탄생시킨 셈이다.
결국 대학 자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입학전형 권한이 사라지고 국가 주도의 수능이 모든 수험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형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수능이라는 국가 통제가 있는 한, 대학교육이 성공하기는 요원하다.
둘째, 수능의 성격 문제이다. 학교제도의 계통성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구축된 하구형(下構型)과 아래로부터 위로 구축된 상구형(上構型)이 있다. 전자는 대학이 원하는 내용을 하급학교가 가르치도록 대학을 정점으로 하는 제도이다. 후자는 초등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중등학교 교육을 결정하고 마찬가지로 대학입학도 중등학교 교육 결과를 토대로 하는 제도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학력고사는 ‘상구형’이고, 수능시험은 ‘하구형’이다. 하지만 현행 수능시험은 명목상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하구형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질적 내용은 공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 상구형이다.
이렇게 정체성 없는 국가 단위 전형을 통해서 창의성 있는 인재를 걸러 낸다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 시험은 대학이 21세기를 선도할 인재를 육성할 소지를 말살해버렸다.
셋째, 수능을 비롯한 교육에 대한 모든 형태의 국가독점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인 국가사회주의에 근거한 발상이다. 문항 출제와 고사 실행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 공무원 출근시간 조정, 영어듣기 평가시간에 비행기 이착륙 금지, 군사훈련 금지, 수험생 전원에게 샤프펜의 국가 제작 및 배포, 빈번한 문항 오류로 해당 기관장 경질 등이 모두 국가독점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한때 사교육비 경감을 내세워 EBS 강의내용에서 수능시험을 출제한다고 하니, EBS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EBS 교재를 중심으로 한 사교육이 성행한 것도 국가독점의 병폐다.
올해는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여러 조치가 이루어졌다. 일부 악덕한 사교육 카르텔 척결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이번 수능에 ‘킬러점검반’이 투입된 사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교육부가 자랑스럽게 홍보한 이 조치는 국가독점 정책이 지니는 또 다른 병폐를 보여준다. 과거 5공 시대 ‘대통령 특명검열단’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다. ‘명에 따라’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검열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해를 인정한다면 대학에 선발권을 실질적으로 부여하는 원칙에 따라 수능은 철폐해야 한다. 수학(修學)능력을 타당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하고자 한다면 민간기구가 수행해야 한다. 복수의 전문기관이 복수 유형의 시험을 마련하여 연중 여러 차례 실시하도록 한다. 수험생은 이 시험 중 원하는 대학과 전공 특성에 맞게 선택하여 응시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수능처럼 획일적이고 일회성 전형으로 수험생의 앞날을 결정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대학 자체적으로 전형을 볼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 ‘본고사’라는 언어적 수사(修辭)에 매여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말아야 한다.
직종이 셀 수 없이 다양화하는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수능과 같은 국가 주도의 도식적이고 고루(固陋)한 전형으로 평가할 수 없다. 끝으로 현실은 사교육비 경감이 수능시험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