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공개할 전체생존기간(OS) 기대…주요국 허가 가시권”
“전체생존기간(OS) 데이터가 나오면 ‘렉라자’의 가치는 또 한 번 올라갈 것입니다. 파트너사와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에서 만난 오세웅(53)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은 폐암 신약 렉라자의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렉라자는 국내 최초로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유한양행의 연구·개발(R&D) 산물이다.
2011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오 연구소장은 2020년부터 회사의 R&D 중심축인 중앙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유한양행은 올해 5월 중앙연구소를 사업본부급으로 격상, 오 연구소장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R&D를 더욱 강화하겠단 유한양행의 의지가 반영된 재편이다.
렉라자는 2021년 1월 허가받은 국산 31호 신약이다. 1·2세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티로신키나제억제제(TKI)를 투여하고 T790M 내성이 생긴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에 쓰인다. 올해 6월 1차 치료까지 적응증을 확대하고 이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3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렉라자는 1차치료제로 급여가 확대되면 단숨에 연매출 1000억 원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적응증 변경 허가 2개월 만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거치고, 지난달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까지 통과해 건강보험공단 약가협상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통과만 남겨놓은 상태다. 경쟁상대인 ‘타그리소’보다 출발이 5년 늦었지만, 순식간에 이를 따라잡았다.
오 연구소장은 “경쟁약은 아시아 환자들에게 반응이 떨어졌고 돌연변이형에서 절반을 차지하는 L858R 치환 돌연변이에서도 한계를 보였다”라면서 “경쟁약 대비 장점들을 부각하겠다. 처방 데이터도 쌓이고 있어서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한양행은 7월부터 조기 공급 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 EAP)을 통해 급여 확대 시점까지 렉라자를 환자들에게 무상 공급하고 있다. 연간 7000만 원이 넘는 약가 부담을 덜어주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통 큰 결단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오 연구소장은 “우리가 개발한 약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정”이라며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사업으로, 우리 직원들의 긍지도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3)에서는 파트너사 얀센이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유효성을 평가하는 마리포사(MARIPOSA) 임상 3상 연구의 중간 데이터가 공개됐다. 관심을 끌던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은 23.7개월로 압도적인 결과를 내놓진 못했다.
오 연구소장은 “막연하게 드라마틱한 기댓값이 시장에 존재했던 것 같다”라면서 “임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중요한 통계학적 데이터들은 확보했다. 1차평가변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사전에 충분히 교감해 허가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렉라자는 반등할 열쇠를 쥐고 있다. 환자가 치료를 시작해서 사망하는 순간까지를 추적한 OS 데이터다. 얀센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 이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그동안 EGFR 표적항암제와 다른 약제의 병용은 여러 번 시도됐지만, 대부분 PFS만 증가하고 OS에서는 우위를 보이지 못해 사용되지 않는다”라면서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에서는 OS가 우리의 목표를 충족할 가능성을 보여줬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나오면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얀센은 리브리반트를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변경하기 위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하면 정맥주사(IV) 대비 투약편의성이 대폭 개선된다. 병용약물인 렉라자와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얀센은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의 성공을 예상하고 시장 가치를 연간 50억 달러(약 6조5000억 원) 이상으로 전망했다. 렉라자가 단일요법으로 글로벌 출시될 가능성도 있다.
오 연구소장은 “국내에서 너무 저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 얀센을 통해 주요국에서 허가받고 시판되는 것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라면서 “렉라자의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렉라자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약이 아니다. 렉라자 개발 이전에는 유한양행의 R&D가 크게 부각하지 않았지만, 회사는 꾸준히 투자하며 신약 개발의 뜻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 연구소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R&D를 시작했다”라면서 “2000년~2010년 사이 일시적인 부침이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이를 회복하면서 R&D 중심 회사로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말했다.
‘넥스트 렉라자’ 예비군은 벌써 추려졌다. 10종의 후속 신약 라인업을 갖춘 가운데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수출한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YH25724’ △지아이이노베이션에서 기술도입한 알레르기 치료제 ‘YH35324’ △에이비엘바이오와 공동연구하는 면역항암제 ‘YH32367’이 주력 파이프라인이다.
알레르기 치료제 개발 경쟁 속에서 YH35324는 안전성 측면에서 우수성을 보였다. 원인물질을 무력화시켜서 천식, 두드러기, 아토피피부염 등 다양한 질환에서 쓸 수 있다. YH32367은 전임상에서 항암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올해 임상에 착수했다. 내년께 중간 현황도 공개할 계획이다.
그는 “NASH 치료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임상이지만 YH35324나 YH32367은 적응증을 잘 잡고 미충족 수요를 공략하면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라면서 “렉라자처럼 임상 2상 후 조건부 허가를 받는 스토리를 기대해볼 만하다”라고 밝혔다.
오 연구소장은 “정말 큰 회사가 되려면 해외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시장 규모가 작아서 중국처럼 내수만으로 연구개발비를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같은 대규모 시장에서 직접판매(직판)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는 “신약의 판매까지 성공하려면 다양한 국가에서 마케팅 파워가 있어야 하고, 그걸 가진 회사들은 글로벌 빅파마다”라면서 “우리도 직판까지 가기 위해 자본과 체력을 키우고 있다. 그 길을 단축하려면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을 발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졸업 △동대학원 수의학 박사 △1995년~ JW중외제약 책임연구원 △2011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수석연구원 △2018년~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부소장 △2020년~현재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