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 절반 이상인 4.7조 보유
녹인형 ELS 비중 커 손실우려↑
은행권, TF구성·직원 세미나 등
고객 관리·리스크 최소화 나서
홍콩 H지수 폭락 여파로 은행권에서 판매된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자 은행권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상품 설명 과정을 모두 녹취했고, 펀드와 달리 지수를 추종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 H지수와 연계된 ELS 상품이 대거 만기 도래할 것으로 보이면서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만기 도래 물량이 내년 상반기에만 10조 원 가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을 통해 판매된 홍콩 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물량은 8월 말 기준 8조2973억 원 규모다. 은행별로 KB국민은행이 4조7447억 원으로 은행권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이어 신한은행(1조3329억 원), NH농협은행(7330억 원), 하나은행(7380억 원), SC제일은행(6187억 원)순이다.
ELS는 주가 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이다. 통상 ELS는 만기가 3년이다. 만기 시점에 지수가 판매 시점보다 35~55% 이상 떨어지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H지수는 2021년 초 대비 현재 44% 넘게 하락했다. 1만2000선을 넘었던 때 비해서는 반 토막 난 셈이다. H지수는 홍콩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식 중 50개 기업을 추려서 산출한 지수다. 텐센트 홀딩스와 알리바바그룹, 샤오미 등 우량기업이 다수 포함돼있어 ELS 기초자산으로 많이 사용됐지만, 중국 부동산 리스크와 경기 침체 등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의 판매분 중 손실 발생 구간(녹인·Knock-In)에 진입한 ELS 잔액은 4조6434억 원이다. 특히, ‘녹인형 ELS’ 비중이 높아 원금 손실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녹인형 ELS는 3년 계약기간 중 녹인 구간에 한 번이라도 진입하면 만기 시점의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보다 30~35% 넘게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한다.
‘노(no)녹인형’을 판매한 다른 은행들도 손실로부터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노녹인형은 계약 기간에 주가가 얼마 떨어지든 상관없이, 만기 때 조기상환 조건에 충족하면 약정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꼽히는 노녹인형이라도 만기 때 가입한 시점보다 지수 하락 폭이 65% 안팎이어야 하는데, H지수 상황을 고려하면 녹인이냐 노녹인이냐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ELS와 비슷한 구조지만, 만기가 없는 주가연계펀드(ELF)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8월 말 기준 5대 은행이 판매한 ELF 잔행은 5805억 원이다. 이 중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 잔액은 2757억 원이다. 만기가 도래한 잔액 중 1169억 원이 손실 발행 구간에 진입했다.
손실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이면서 은행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고객들의 항의를 우려해 명예퇴직을 신청하거나 휴직을 신청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손실 가능성이 있다 보니 투자행위 자체를 취소하고 싶은 마음에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는 민원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ELS 고객 대상으로 주기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알림톡 또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황과 시장 전망을 안내한다. 신한은행은 6월 주가연계신탁(ELT) 사후관리 TF를 발족했다. 각 지역본부별 사후관리 담당 직원을 배치해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부행장을 위원장으로 한 TF가 구성돼 있다. 지수 추이 보면서 고객들에게 문자메시지로 안내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장문 문자메시지(LMS)를 통해 홍콩 H지수가 편입된 상품의 최초 손실구간 진입시부터 지속적인 안내와 함께 주간단위 H지수 시황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는 ELF 손님지원 전담대응팀을 운영해 해당 영업점별로 사전안내를 완료했다.
우리은행은 관리 영업점에서 전 고객과 접촉해 관리를 강화하고, 영업점 직원들의 시장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매월 증권사 애널리스트 초청해 시황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