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전문위원(언론학 박사)
벗어나면 결혼·출산 엄두도 못내
다양한 삶 존중받는 ‘문화’ 아쉬워
‘0.70’, 이 숫자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알 것이다. 지난 분기 한국의 출산율이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치이다. 한국의 저출산 위기는 굳이 통계적 수치로 보지 않아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저출산 문제에 ‘제 1 책임(?)’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MZ세대의 일원이다. 곧 40대를 맞이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중에 자녀가 있는 친구보다 하나도 없는 친구가 조금 더 많다.
이렇게 극심한 한국의 저출산 위기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집값 폭등, 사교육비를 포함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양육 부담, 맞벌이 증가로 인한 양육 공백…. 그런데 앞의 원인들도 심각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한국의 사회적 망탈리테(mentalite)에 ‘삶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은 특정한 조건이 되지 않으면 결혼과 자녀 양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의 방식에 정답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맞추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예컨대, 결혼식은 호텔 예식장에서 해야 하며, 신혼 생활은 수도권 내의 신축 아파트에서 해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의 조건들을 달성할 수 없을 때, 이들은 결혼이나 출산 계획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이와 같은 삶에 대한 가치관은 유럽에서의 사고방식과 많이 대조된다.
필자의 유럽 친구들은 경제력이나 가정 형태와 상관없이 현재 대부분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있다. 프랑스인 친구 A는 11년 전 가장 먼저 아빠가 되었다.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낳은 그는 작은 월세방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 가장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덴마크인 친구 B 또한 지은 지 100년이 넘어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자녀 넷을 키우고 있다. 자동차가 없는 이들 부부는 주말에는 남편과 각자 아이들을 둘씩 자전거에 태우고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한국의 친구들보다 악조건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속물적이라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친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그만큼 유럽 사회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A와 B가 한국인이었다면, 자녀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자녀를 가질 수는 있어도 아마 행복하게 양육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월세 집에 자차도 없이 아이 넷을 낳았다고 하면 “대책 없다”는 비난을 들었을 테니 말이다.
수년 전 진화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저출산 위기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많은 이들이 진화를 우수성을 향해 나아가는 수직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화의 핵심은 ‘다양성의 증가’에 있다고 홀(Hall)을 비롯한 생태학자들은 말한다. 진화라는 것은 1차적으로 생태계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환경에서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다양한 형태와 삶의 방식을 가진 개체들이 필요하다. 나뭇가지에 그물 집을 짓는 거미가 있는 반면, 땅 속에 굴을 파는 거미가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증가를 통해 생명체의 여러 종(種)은 생존해 왔다. 한국인이라는 인간의 한 종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오랜 세월 동안 지구가 그래왔듯이, 한국 사회가 ‘우수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