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평사도 억울함과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눈에 잘 띠지 않는 종목에 대한 호가나 거래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고채와 통화안정증권(통안채), 공사채, 은행채, 회사채 등 명목채만 1만6000개에서 1만7000개 종목에 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도성예금증서(CD) 등과 연계하는 변동금리부채권(FRN) 이나 여타 파생채권까지 합하면 채평사가 매일같이 금리를 확정해야 하는 종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설령 지표물이나 바스켓물이라 하더라도 기관간 장외채권 거래의 기본단위인 100억 원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불과 10억 원 정도의 호가를 내놓거나 매매를 성사시켜 놓고 이를 모두 반영해달라는 주장도 무리가 있다고 봤다. 나아가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장 종료직전 거래를 집중하거나 허위 매물을 내놓는 게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반박한다.
실제로 민평금리를 놓고 벌이는 채권시장 행태는 실로 점입가경이다. 민평금리를 확정해야 하는 오후 4시를 불과 10여분 앞두고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매매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거래가 없다가 매매와 호가를 집중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민평금리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런 투자에 집중하는 기관투자자들의 실명까지 나돌 정도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정도가 됐다. 일부 기관에서는 이를 노린 알고리즘 매매까지 성행하고 있는 중이다. 즉 이들이 움직이기 30분 전인 오후 3시20~30분 무렵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매수 내지 매도 한 후 이들이 4시 10분전 매매와 호가를 내놓을 때 자동으로 매도 내지 매수하는 것이다. 불과 30분 만에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그야 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이처럼 민평금리에 목을 매는 것은 채권 종목에 대해 매일매일 시가평가를 하고 있으며 그날그날 기관투자자들의 실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채권금리 고시방식에는 금융투자협회가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고시하는 최종호가수익률이라는 금리가 있지만, 국고채와 통안채 등 일부 종목에만 국한돼 있다.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채권관련 전 종목의 금리를 도출하는 채평사들의 민평금리를 기반으로 시가평가를 한다. 국내 대표 채평사는 5개사로 아이스피앤아이, 한국자산평가, KIS자산평가, 에프앤자산평가, 이지자산평가가 있으며, 기관투자가들은 통상 최소 3개사 평균 내지 최대 5개사 평균 금리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장외시장이라는 특성상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나 이같은 논란이 더 이상 기관투자자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는 점에서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 올해부터는 개인들도 채권투자를 크게 늘린데다, 채권과 연계된 각종 펀드도 크게 늘었다. 올해는 실패했지만 세계 선진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과제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이 장 종료 30분전 평균가격을 민평금리로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관계기관인 금융감독원과 금투협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참여자와 전문가까지 머리를 맞대는 공론의 장부터 마련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