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의원은 4일 자신의 SNS에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며 “영화관을 찾는 마음이 무거웠다. 44년 전 1979년 12월 12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현장에서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 일병으로서 현장에서 겪었던 충격적인 기억들이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이 복무한 수도경비사령부 33경비단의 당시 단장은 하나회 회원이었던 김진영 대령(육사 17기, 제29대 육군참모총장)으로, 12·12 반란에 가담한 핵심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지휘관인 33경비단장(김진영)은 반란군에 가담해 자기 혼자 청와대 30경비단(단장 장세동)에 가 있었고, 필동의 33경비단 병력들은 부단장 지휘하에 장태완 사령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했다.
이어 “평소 병사들 앞에서 근엄하게 군기를 잡고 군인정신을 외치던 장교들이 편을 갈라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추악한 하극상을 보이고 어느 줄에 서야 살아남을지를 계산하느라 우왕좌왕하던 모습을 고스란히 봤다”며 “‘저게 군인이냐?’는 생각에 정치군인에 대한 환멸을 갖게 만든 날이었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또 “무장을 한 채 명령만 기다리고 밤새 대기하다 새벽에 수경사령관실에 모인 장군들을 수경사 헌병단이 모두 체포해 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더니, 곧 ‘상황 끝’이라는 중대장의 말을 듣자 허탈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장태완 사령관은 사라졌고 당장 13일 아침 노태우 사령관 취임식을 한다고 전 병력이 연병장에 다시 집합했다”고 군사쿠데타 성공 이후 당시 상황에 대해 밝혔다. 그는 “전날(12일) 밤 부암동 탄약고에서 가져온 탄약을 원위치하느라 트럭을 타고 북악 스카이웨이로 향하는데 광화문 앞에는 전방을 지켜야 할 9사단 병력들이 와있었다”며 “그 이듬해 5월 서울의 봄과 광주의 봄은 그렇게 어긋난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며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44년 전 그날 밤 전사한 故 정선엽 병장, 故 박윤관 일병의 명예를 지켜드리는 일”을 언급했다. 당시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헌병대 병장으로 제대를 3개월 앞두고 있었다. 그는 1979년 12월 13일 새벽 국방부 점령을 위해 진입한 제1공수특전여단과 맞서다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숨진 정선엽 병장은 1980년 3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으며 2022년 12월 7일 ‘순직’에서 ‘전사자’로 분류됐다.
수경사 33헌병대 소속이었던 박윤관 일병은 신군부 측 상관의 명령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공관 초소를 점령한 뒤 탈환에 나선 해병대가 쏜 총에 맞아 1979년 12월 13일 새벽 순직했다. 신군부 측은 박 일병을 상병으로 1계급 추서해 반 쿠데타군 소속이었던 정선엽 병장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병들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추모비 건립, 훈장추서 요구가 있었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유 전 의원은 “적과의 교전이 아니라 정치군인들의 쿠데타 속에서 명령을 따르다 전사한 이 병사들의 명예를 지켜드리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며 “영화 ‘서울의 봄’의 날갯짓이 정 병장과 박 일병의 명예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