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의 여성 주인공이 사랑에 안착하는 신데렐라 캐릭터에서 벗어나 복수·성공·초능력 등 강렬한 서사를 가진 독창적인 인물로 변모하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영국 BBC 방송은 10일(현지시간) ‘K드라마, TV 속 한계를 뛰어넘는 여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많은 K드라마에는 사회와 미디어 관행의 중대한 변화를 반영하는 복잡하고 강력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밝혔다.
BBC는 “이제 K드라마에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 주인공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며 올해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와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거론했다.
매체는 이들 드라마에 각각 괴롭힘에 맞서 복수하는 여성과 자폐증이 있는 여성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며 성적인 장면이나 양성애·노인의 연애 등 과거 금기시됐던 내용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BC는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의 역할이 항상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면서 버릇없는 부자 상속자가 용감한 서민 소녀에게 반하는 ‘꽃보다 남자’와 같은 드라마가 과거 인기를 끈 대표적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는 방송 당시 34.5%(TNS미디어코리아, 전국 기준)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을 언급하며 “요즘 K드라마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여성도 나온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잠입한 딸의 복수를 다룬 ‘마이네임’은 강도 높은 액션까지 선보인다.
그러면서 지금도 부자나 강한 캐릭터가 선호되지만, 이제는 그 주인공이 여성일 수 있다면서 남한의 여성 재벌 2세와 북한의 장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예로 들었다.
20년 넘게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가정주부가 의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닥터 차정숙’의 주연 엄정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차정숙은 ‘엄마로서 몫을 다 했다’고 말하면서 꿈을 찾아가는데, 그의 여정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데뷔 당시에는) 30세가 되면 주연을 맡을 수 없었고, 35세가 넘으면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재능있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나이 때문에 화면에서 사라졌을 것”이라며 “이제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많이 볼 수 있다. 제 나이에도 여성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전했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구축해 온 백미경 작가는 두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품위있는 그녀’가 성공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 드라마를 제작하려는 방송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여성 슈퍼 히어로 캐릭터가 등장한 ‘힘쎈여자 도봉순’이 성공을 거둔 후에야 방송국이 제작을 결정했다면서 “내 드라마 이후로 여성 캐릭터는 더 적극적이고 힘이 넘치며 멋지고 독립적으로 변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판도를 바꾸고 싶다”고 덧붙였다.
BBC는 한국 드라마에 전례 없던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게 된 데에는 경제 발전에 따른 여성의 지위 변화, 향상된 교육 수준, 사회적 성공의 갈망, 자금력이 풍부한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들의 투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