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급망 다변화 ‘린치핀전략’을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미중 간 치열한 경쟁과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 11월 27일 공급망 회복위원회 창립 첫 회의를 개최하며 공급망 강화를 위한 30개 조치를 발표했다. 비슷한 시간 베이징에서는 미국에 대응해 세계 최초의 국제공급망 박람회(11월 28일~12월 2일)가 개최되었다. 양국 행사 모두 ‘첫’, ‘최초’ 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행된 만큼 그 의미는 남다르다. 미국식 공급망과 중국식 공급망이 충돌하면서 총성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범정부 차원의 공급망회복위원회를 개최하며 반도체를 넘어 전기차 배터리·무기시스템·필수의약품 등 전략물자의 미국 내 생산확대 등 중국에 맞서 자국 공급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 안보와 경제를 총괄하는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공급망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상무부·국방부·에너지부·국토안보부·보건복지부 등 주요 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매머드급 협의체를 구성했다. 미국이 제조공급망 회복을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하는 등 공급망을 경제안보·국가안보 관점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 국방에 필요한 물자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해당 산업을 지원하고,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강력한 법적장치도 동원한 것이다. 나아가 상무부 내 공급망센터를 신설해 각 부처 간 관련 정보를 공유해 공급망 상황을 감독·관리하며 미국 주도의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속셈이다.
한편, 중국은 글로벌기업들과의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통해 중국식 공급망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속내다.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 ‘중국기업을 도와 글로벌시장으로 가자’ 제1회 중국국제공급망 촉진박람회 내 스타박스와 구글 부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슬로건 문구들이다. 돈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꼬리표가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미국 주도의 공급망 생태계가 더욱 심화되면서 중국은 공급망 박람회를 구상했고, 지난 7월 4일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이탈리아·캐나다·미국·영국 등 국가를 순회하며 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그 결과 55개국 515개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했고, 이 중 26%가 외국기업(132개)으로 미국과 유럽기업이 36%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애플·퀄컴·엑슨모빌·인텔·HP·GE헬스·페덱스·버거킹·미국대두협회 등 미국기업·기관들이 20%를 차지했다. 박람회 기간 360회의 공급망 관련 세미나 및 교류활동이 진행되어 약 1만5000여 명이 참관했고, 200여 건 약 1500억 위안(약 27조 5000억 원) 규모의 MOU가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망’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이번 박람회의 목적은 크게 3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글로벌 제조기업의 중국 내 투자확대를 위한 목적이다. 올해 들어 급감하고 있는 외국자본의 대중투자 확대를 통해 중국 공급망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중국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9870억 위안(약 181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약 9.4% 감소하며 중국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외국인직접투자 감소에 대한 중국정부의 불안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은 제조업 영역의 외국인 투자허가 제한 조치 전면폐지를 강조했고, 제6회 상해국제수입박람회 리창 총리의 개막실 연설에서도 중국시장 진입조건 완화와 제조업 분야의 외자진입 제한 등 관련 정책을 철폐하고 법에 따라 외국인투자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둘째,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도 중국 중심의 공급망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는 홍보효과이다. 애플이 미중 간 충돌로 인해 확대되는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이폰15 등 애플 일부제품의 인도생산 비중을 높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 공급망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기업 대부분 현지 중국 공급망 기업들과 함께 공동부스 형태로 참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예를 들어, 공급망 박람회를 통해 애플은 200여 개의 공급망 부품 생태계에서 151개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중국은 애플에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하이 메가팩토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테슬라도 공장설립 초기 50여 개의 불과한 중국 공급망 기업이 지금은 중국현지부품 조달비중이 95%에 이를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상태다.
셋째,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간 융통발전을 통해 중국식 공급망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다. 세계 500대 기업 중 53개의 글로벌기업이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500대 기업 중 57개의 대기업과 25개사의 민영 혁신중견기업, 전정특신 중소기업(전문화·정밀화·특성화·혁신화를 갖춘 중소기업), 히든챔피언·작은거인으로 불리는 강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이번 박람회에 참여했다. 중국 배터리업계 1위인 CATL은 배터리 신소재-전자부품-충전설비-제조에 이르는 전기차 생태계 전반에 걸쳐 있는 24개 중국 배터리 공급망기업과 공동으로 참가했다. 중국은 이를 통해 대기업-중견-중소기업 간 융통발전과 개방형 혁신을 가속화시켜 미국 주도의 공급망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급망복원 30개 조치에 한국·일본·EU 등 동맹국 및 우방국가들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도 포함되어 있어 향후 미국 공급망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도록 강요당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반면, 중국 공급망 박람회에 단독 부스로 참가한 우리기업은 중소기업 1개사에 불과하며 심각한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공급망 구조의 다변화를 위한 ‘린치핀(linchpin) 전략’이 필요하다. 향후 미국·중국·EU 주도의 공급망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3자간 분절화가 더 극명해질 수 있다. 대미, 대중에 집중되는 공급망구조는 결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 양국 곳곳에 린치핀이 되도록 선도적 위치에서 다변화 시도가 필요하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사)중국경영연구소 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