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중국 경기가 변수"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은 “반도체 경기 자체는 지금 락바텀(Rock Bottom·최저점) 형태를 벗어나는 단계”라며 “아직 가격이 더 회복되고 수급 밸런스(균형)가 제대로 맞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18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업황에 대해 “아직 전체적인 회복보다는 일부의 어떤 수요가 전체 마켓을 끌고 가고 있다”며 “D램은 나아지고 있지만, 낸드 쪽은 아직 거의 잠자는 수준”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4개 분기 동안 누적 10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나, 최근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늘며 3분기에는 D램 부문이 흑자 전환했다. 다만 낸드는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 데다 공급업체 간 경쟁이 심해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최근 기술 경쟁과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대규모 투자 양상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과잉 투자 때문에 상당히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보호무역주의를 하다 보니 자국에서 만든 것만 쓰겠다는 개념으로 접근이 되면 솔직히 우리처럼 시장은 작고 생산은 많은 곳은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회장은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을 방문하고 협력 관계를 다졌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한다. 1년에 40대 안팎만 생산하기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이 장비를 공급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최 회장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이 축소 지향적으로 해오면서 지금은 거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그 한계 때문에 노광장비나 모든 것들이 다 비싸지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 비싼 장비를 계속해서 사다가 만들어봐야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다른 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며 “ASML도 반도체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자기 장비가 계속 잘 쓰여서 반도체 효율이 살아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게 과제인 만큼 저희는 그런 의미의 협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내년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중국 경기의 회복 속도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봤다.
최 회장은 “현재 전망으로 보면 중국 경기가 단시간에 회복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중국도 장기적으로 보면 내년 말에나 회복세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우리나라도 그런 추세를 따라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래도 우리가 많이 의존하는 자동차나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다행”이라며 “전체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는 방향으로 보고는 있지만, 워낙 진폭이 큰 변수가 많아서 섣부른 추정을 해서 얼마만큼 회복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내년 미국 대선에 대해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결국 미중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며 “(갈등의) 크기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좋든 싫든 아직도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라며 “중국과 필요한 협력 관계는 계속해서 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제안한 ‘한일 경제협력체’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최 회장은 “이제는 같이 협력할 때가 됐다”며 “국민 감정이나 여러 다른 정치적 요소도 있지만 가능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노력해보자는 취지로 일본 상의와도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 회장의 대한상의 회장 연임 여부도 관심을 모았다. 최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대한상의 회장의 임기는 3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저 자신도 돌아보겠다”며 “연말에 쉬면서 생각을 가다듬어서 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