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민간LNG산업협회 부회장
대덕·판교도 인재·최고기업 포진해
인종·성별 아우르는 ‘기질’ 본받아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너제이까지 길게 뻗은 클러스터(Cluster: 연관이 있는 산업의 기업과 기관들이 한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산업집적단지) 지역을 지칭한다.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첨단 산업이 발달되어 반도체 소재인 ‘실리콘’에서 유래한 실리콘 밸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의 부상 후 퍼스널 컴퓨터(IBM 1981년), 인터넷(google 2000년) 및 스마트폰(애플 2007년) 등으로 이어지는 정보통신 혁명도 그 시작은 모두 실리콘 밸리였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및 애플 등이 모두 실리콘 밸리가 낳고 키운 글로벌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되었기 때문이다.
AI시대에도 현재 실리콘 밸리가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오픈AI, 구글, 엔비디아, 메타, 아마존과 같은 AI 분야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모두 실리콘 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꽤 오래전 실리콘 밸리 팰로앨토에서 살 때의 경험이다. 초등학생 딸아이가 학생회장에 나가겠다고 또래 친구들과 선거 준비로 집이 부산하였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영어도 제대로 못해서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였는데 그저 신기하기만 하였다. 놀랍게도 딸아이는 국적,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차별화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었다. 실리콘 밸리의 다양성과 개방적인 분위기가 학교 및 일상생활에서 불편함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뇌리에 선명한 실리콘 밸리의 강력한 매력포인트는 푸른 하늘과 햇살이 가득한 날씨뿐만 아니라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데 기여하는 오픈마인드와 함께 ‘도모하는 스피릿(spirit)’일 것이다.
네크워크는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글로벌 최고 인재들이 모여 기술과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각자의 오픈마인드와 함께 도모하는 스피릿이 네트워킹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선을 돌려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이제 우리도 실리콘 밸리까지는 아니지만 대덕밸리와 판교타운이 귀에 익숙하다. 새롭게 펼쳐질 용인·평택 반도체 밸리는 더욱 눈에 선하게 와닿는다. 우리도 뛰어난 젊은 인재와 삼성, SK, LG와 같이 실리콘 밸리에 버금가는 기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리콘 밸리처럼 세상을 변화시킬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나라의 첨단 클러스터에서는 실리콘 밸리와 같은 오픈마인드와 도모할 수 있는 스피릿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이해된다.
이민 주축의 미국이라고 해서 오픈마인드와 도모하는 기질(spirit)이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었다면 동부 보스턴이나 남부 애틀랜타에서도 인터넷, AI와 같은 혁명이 일어났을 법하다. 그렇지 못한 것은 무언가 결핍이나 부족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덕이나 판교가 필자와 딸아이가 미 실리콘밸리 지역 팰로앨토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글로벌 최고 인재와 그 가족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상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면 실리콘 밸리에 버금가는 이노베이션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경쟁력은 이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앞서있다. 젊은 인재들의 오픈마인드와 함께 도모하려는 사회적 스피릿은 한국 문화를 브랜드한 ‘K-’(K-팝, K-드라마, K-뷰티 등)를 통해 세계적으로 이미 검증되었다. 한국도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혁신 클러스터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숨 쉬는 공기나 마시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사회적 편안함과 문화적 동질성을 느낄수 있도록 해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글로벌 최고 인재가 모일 수 있고 생활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실현된다면, 향후 AI 시대가 다극화, 고도화될 때 우리의 첨단 클러스터도 글로벌 중추 클러스터의 하나로 발돋움하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