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기업이 느끼기에 공무원이 없습니다.”
얼마 전 만난 기업의 중간 간부가 했던 말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현재 자신이 생각할 때 현재 정부의 산업 관련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3개 정부의 공무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지난 정부에서는 공무원이 엉뚱한 일만 했고, 지난 정부에서는 복지부동했으며, 이번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이 됐는데,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이 아직도 필요하냐? 그냥 기업들이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방해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기업들이 가장 필요한 건 대규모 투자인데, 현재 덩치가 커진 우리 기업들이 자체 자금으로 이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규모 투자는 회사채 발행이나 투자 은행 등 외국의 거대 자본 참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이 노력하는 분야’라는 것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주력하는 분야이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부분이 여전히 훨씬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특히 더 정부가 나서 큰 틀의 방향성을 잡아주거나, 기업이 하려는 분야에 대한 포장이라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이라는 것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전에도 어떤 시점에서는 그것이 맞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문제는 어떤 것이든 제시하려고 했고, 앞서서 만들어가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판은 7차까지 진행됐던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꼽는 이가 많다. 한정된 자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고도성장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됐다.
일부에서는 그 시대 세계 경제 상황이 뒷받침해줬다고 하지만, ‘그럼 다른 나라들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분명 그 역할이 컸던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범위를 좁혀 현재 전자·정보통신 강국으로 발돋움한 과정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981년 7월 15일 정부는 기존 산업 육성 계획을 전면 재조정한 ‘전자공업 육성’ 계획을 확정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입안을 주도하고 상공부·기획재정부·재무부·체신부·과학기술처 등 관련 부처와 산업계, 연구소 등 핵심 인재들이 참여한 작업반이 치열한 토론을 거쳐 육성안을 확정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당시 선진국들이 독점하는 반도체, 컴퓨터, 전화교환기 등을 3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와 통신 혁명을 이룩한 전화교환기, 정보화 시대 핵심인 컴퓨터 산업이다.
3대 전략 산업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이자 대들보가 됐다.
물론 개별 기업이 세계 일류나 초일류로 발돋움한 상황에서 정부의 잘못된 훈수나 방향성 제시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역량을 고려할 때 오히려 자유롭게 풀어주고, 마음껏 사업을 영위하도록 풀어주는 게 더 어울린다.
그런데, 현재의 국제 정세는 기업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이다. 보호 무역이 강화되면서 강대국일수록 더 많은 산업 정책을 시행한다.
기업의 역량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국가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기업 경영이 단순히 경영 논리로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상황은 개별 기업보다 국방, 외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더 큰 집합체, 즉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
단지 정부의 역할이 변하고 조정되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그 책임을 공무원에게만 지울 수 없다.
일에 대한 책임과 역사의 기록은 권한을 가진 자들의 몫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책임과 권한을 현 정부에 부여했다. 그 책임과 권한이 원활하게 작용할 때 국가 시스템은 무리 없이 돌아간다. 그 현상으로 보이는 것이 공무원의 일이다.
공무원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기업인의 하소연이 안타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