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차이 남매를 데리고 온 그녀도 콧물 뽑기의 신봉자였다. 아침에 둘째를 데리고 와 진료를 보고 코를 쑥 뽑고 돌아갔다. 그리고 오후에 첫째 유치원이 끝나면 첫째 진료를 보고 누나를 따라 온 둘째 코를 또 뽑아 달라고 들이미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콧물을 뽑았고 그때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아이는 발버둥치며 울었다. 그래도 이 정도 부탁은 탐탁지 않긴 해도 들어줄 수는 있었다.
이번에는 두 살 짜리 아기가 기침을 콜록 거리며 엄마 품에 안겨 진료실로 들어왔다. “약은 좀 길게 일주일 정도 먹게 주세요.” “그렇게 길게는 어려워요. 중간에 나빠지면 약 바꿔야 되고 진찰도 필요하고요.” “내일 가족여행 가는데 다시 병원 올 수가 없고 여행 가서 병원 가기도 어렵잖아요.”
이 부탁은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오랜 설득 끝에 4일분 약을 처방하고 여행지에서 나빠지면 꼭 다시 진료를 보기로 했다. 엄마는 자신의 부탁이 거절돼 기분이 상한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엄마가 나가고 태어난 지 한 달이 갓 지난 아기가 속싸개에 돌돌 싸인 채 부모와 함께 들어왔다. 엄마가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손톱 깎다가 손 끝이 베여서 피가 났어요.” 손가락을 소독해주고 연고를 처방해주고 주의사항을 설명해줬다.
젊은 아빠가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선생님이 우리 아기 손톱 좀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아빠는 사뭇 진지한데 황당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 헛웃음만 지었다.
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