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사명이 기업을 착각하거나 헷갈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 대기업과 이름이 비슷해 계열사로 오해하는가 하면, 이로 인해 상표권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글로벌 완구회사 레고가 제기한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했다.
레고는 2015년 레고켐바이오가 ‘레고켐파마’란 상표를 출원하자 식별력과 명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이의 신청을 했다. 이후 특허심판원, 특허법원을 거친 끝에 대법원은 레고의 손을 들어줬다. 레고를 연상시켜 식별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다만 분쟁의 대상인 레고켐파마는 2020년 바스칸바이오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이번 판결이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향후 사명으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사명 변경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례 외에도 무관한 기업끼리 사명이 비슷한 때가 있다. 특히 대기업의 바이오사업이 활발해지면서 혼선을 빚는다. 대표적으로 재계 서열 1위 삼성과 이름이 비슷한 삼성제약이 있다.
삼성제약은 1929년 삼성공업제약으로 설립해 1938년 탄생한 삼성그룹보다 ‘삼성’이란 회사명을 먼저 사용했다. 현재의 삼성제약으로 바뀐 것은 2014년 젬백스가 인수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기업 아이덴티티(CI)를 삼성과 유사하게 변경해 분쟁이 일기도 했다. 특히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하면서 바이오사업에 진출한 뒤 심화됐다.
한화제약은 1976년 양지약품으로 창업해 1982년 네덜란드 오르가논과 합작, 한화제약으로 출범했다. 한화제약도 한화그룹보다 ‘한화’를 먼저 사용했다. 한화그룹은 1993년 사명을 한국화약에서 한화로 바꿨다. 현재는 철수했지만, 한화가 과거 제약사업을 벌일 때 한화제약을 계열사로 인식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현대약품과 현대바이오사이언스도 현대그룹과는 관련 없는 기업이다. ‘현대’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토건사가 1947년 설립되면서부터 사용됐다.
벌레물림치료제 ‘버물리’로 유명한 현대약품은 1965년 현대소독화학공업에서 출발해 1973년 현대약품공업으로 사명을 변경, 2007년 지금의 현대약품이 됐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2000년 현대전자로부터 분사한 모니터 제조 회사로 출발했다. 모니터 사업을 이어오다 바이오를 주요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2018년 현재 사명으로 바꿨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와 비슷한 현대바이오랜드는 범현대 계열사다. 현대백화점이 2020년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사업을 위해 SK바이오랜드를 인수하면서 ‘현대’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두 회사 사이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이 밖에도 경동제약, 경남제약, 하나제약, 영풍제약 등이 특정 기업을 연상시키지만 무관한 경우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간 전혀 관계가 없지만, 사명이 비슷하다 보니 주주들이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라며 “비슷한 사명의 기업에 특정 이슈가 생기면 같이 휩쓸리거나 주가에 변동이 생기는 등 영향을 받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