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건 국방부가 최근 일선 부대에 배포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입니다. 이 교재는 국방부가 5년 단위로 개편해왔는데요. 2019년 발간된 기존 교재가 노영구 국방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최영진 중앙대 교수 등 박사학위와 관련 분야 전문성이 있는 민간 학자들이 집필했다면, 이번 교재의 집필진 10명은 모두 현역 군인과 국방부 공무원, 군무원입니다. 개편된 교재는 이달 말 전군에 배포될 예정이었죠.
이번 교재에는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197~198쪽)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이는 곧바로 논란이 됐는데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를 센카쿠열도, 쿠릴열도와 함께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지역으로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같은 입장은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에 전적으로 반합니다. 또 일본 정부의 ‘전략’과 같은 맥락으로도 읽혀, 국방부가 시정을 약속하며 고개를 숙였음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죠. 그렇다면 일본이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만들려는 데엔 어떤 목적이 있을까요?
일본 정부는 꾸준히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표현해왔습니다. 이는 독도를 국제사회에 분쟁 지역으로 인식시키고,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시켜 영유권을 다투려는 의도입니다. 다만 ICJ 제소는 분쟁 당사국이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여기에 한국이 응하지 않을 것이기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ICJ로 갈 일은 없죠.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뚜렷합니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이며,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역대 모든 정부는 독도를 고유 영토로 규정, 분쟁 지역화를 금기시했습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다투려는 일본 측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함이죠.
당장 외교부가 이날 강조한 입장 역시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임수석 대변인)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언급할 때마다 우리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2021년 6월 일본 자위대가 자신들의 외국어 홍보 영상에서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표기했을 때도 유감과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고요. 일본이 지난해 12월 개정한 ‘국가안보전략’(NSS)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자, 우리 국방부도 한국 주재 국방무관 격인 해상자위대 방위주재관을 초치하면서 “독도에는 영유권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의했죠.
이런 정부 입장과 전면 배치되는 국방부 교재 내용에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애초 “저희 주장이 아니다”라는 면피성 해명을 내놨습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해당 문장이 독도 관련 영토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 방침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 기술을 보면 주어가 ‘이들 국가’(한반도 주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라며 “주변 국가들이 영토에 대해 여러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우리나라가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인식한다는 기술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댜오위다오 문제, 이런 여러 영토 분쟁은 국제적으로 각국의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런 여러 가지 국제정세를 지금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죠.
독도를 꾸준히 넘보는 일본은 ‘이중적 행태’를 지적받기도 합니다. 중국과 분쟁을 벌이는 지역인 센카쿠열도를 사례로 짚을 수 있죠.
센카쿠열도는 독도와는 달리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입니다.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중국은 자국이 해당 지역을 수백 년 소유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 9월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자, 해당 지역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거나 순찰을 늘리는 등 일본과 대치하고 있죠.
일본이 2021년 공개한 ‘2021년판 외교청서’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대폭 강화돼 눈길을 끈 바 있습니다. 그해 2월 중국은 자국 주권, 관할권 침해 시 외국 선박 등에 무기 사용을 허용하는 해경법을 시행했는데요. 일본은 외교청서를 통해 중국의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고, 중국 해경국 선박이 중일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 주변을 항행하는 데 대해선 처음으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반면 독도에 대해선 ‘일본 땅’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갔는데요. 일본은 “한국은 경비대를 독도에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어떤 근거도 없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해선 ‘영토분쟁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점유 중인 센카쿠열도에 대해선 “역사적·국제법상으로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일본의 상반된 모습엔 이해득실에 따른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방부의 이번 교재 내용엔 정치권도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현실에도, 국제법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독도는 명백한, 그냥 대한민국 영토”라며 “즉각 바로잡아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당 창당 준비 중인 이준석 전 대표도 “특검법에 대한 관심을 분산하기 위해 국방부가 이렇게 하는 게 아니길 바란다”며 “국민, 영토, 주권 중 어느 것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고 다른 가치를 이유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명백한 우리 땅인 독도를 두고 일본 극우세력의 전매특허 주장을 인정하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영토와 역사를 지켜야 할 책무를 저버린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반성하고 즉각적인 진상조사와 책임자처벌을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고요. 홍익표 원내대표도 “이 교재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라며 “역사 왜곡과 철 지난 색깔론, 민주주의 파괴와 후퇴 그리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독도 영토 문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이어 “신원식 장관을 파면하고 이번에 회의를 했었던 국가안보실 모든 관계자에 대한 조사와 징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부를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장병 정신교육 자료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인 것처럼 기술한 것을 보고받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히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즉각 태도를 바꿨습니다. 교재 속 문제 된 부분을 시정하겠다고 한 겁니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기술된 내용 중 독도 영토분쟁 문제, 독도 미표기 등 중요한 표현상의 문제점이 식별돼 이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며 “교재를 준비하는 과정에 치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빠른 시일 내에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교재를 보완해서 장병들이 올바르고 확고한 정신무장을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물러섰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28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간 최종 결심은 제가 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다”며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사과도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죠.
신 장관은 “(전방부대 시찰 때) 제가 대통령을 수행했고, (정신교육 교재 독도 기술과 관련해) 질책받았다”며 “(윤 대통령께서) 그런 기술을 한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셨다”고 전했는데요. 그는 “제가 꼼꼼히 살펴야 했는데 마지막 발간 때 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 사과드렸다”며 “전량 회수하겠다고 보고드리고 차관에게 지시해 선조치했다. 우리 장병들이 (독도와 관련해)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전량 회수했다”고 부연, 거듭 불찰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독도는 영유권 분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정부 역시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도 명백한 대한민국 땅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을 뿐, 독도는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일본의 억지 주장에 동조하듯 교재를 구성한 걸 단순 실수로만 치부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감사 과정에서 부실 검증 등 여부를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