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7분께 부산 가덕도에서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데요. 기자들과 문답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김 모(67) 씨로부터 흉기로 목 왼쪽 부위를 공격당했습니다.이 대표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의식을 잃지 않았는데요. 일정을 함께하던 지도부와 당직자 등은 곧바로 119에 신고한 뒤 지혈 등 응급 처치를 했죠.
경찰은 현장에서 곧바로 이 대표를 공격한 김 씨를 검거해 연행했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 씨는 이 대표 주변에서 지지자처럼 행동하던 중 사인을 요구하며 펜을 내밀다가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이 대표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사건 발생 20여 분 만에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간 뒤 헬기로 오전 11시 13분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됐는데요. 외상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검사와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응급처치를 마친 후엔 오후 1시께 헬기 편으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죠.
오후 3시 45분께 시작된 수술은 애초 1시간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2시간 남짓 진행됐다고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서울대병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했습니다.
권 수석대변인은 오후 5시 56분에 집도의가 보호자에게 설명한 수술 경과를 기자들에게 밝혔는데, 이 대표는 내경정맥이 손상된 것이 확인돼 혈전 제거를 포함한 혈관재건술을 받았다는 설명입니다. 정맥에서 흘러나온 혈전이 예상보다 많아 관을 삽입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실한 상황이죠.
안타깝게도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과거에도 빈번히 벌어진 일입니다. 이 중에는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등 정치사에 길이 남은(?) 사례도 있죠.
군부 정권 시절엔 주로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계획적인 공격이 이뤄졌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보복성 테러가 빈번했다는 건데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이던 1969년 6월 20일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초산(질산) 테러를 당했습니다. 당시 괴한들은 귀가하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승용차에 질산 병을 투척했는데요. 질산 병이 자동차 창문에 맞아 차창이 녹아내렸지만, 김 전 대통령은 문을 잠그고 있어 큰 부상을 피할 수 있었죠.
테러가 벌어진 시점은 김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에 반대하는 대정부질의를 한 뒤였는데요. 당시 범인이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3년 8월 8일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도쿄의 한 호텔 방에서 5명의 괴한에게 납치당했는데요. 선박에 감금된 채 동해로 끌려갔다가 5일 만에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 인근에서 풀려났습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사건 발생 25년 만에 안기부의 공식 문건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살해될 뻔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죠.
민주화 이후엔 여야 정치인 모두가 계란을 맞거나 흉기 피습을 당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받았습니다. 이는 양극화된 정치가 낳은 산물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3일 YTN 라디오에서 국내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며 “정치 혐오증 같은 게 결국은 정치인에 대한 적대감, 나아가서 이런 구체적인 테러 행위까지 이어지는 건 아닌지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짚었습니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2년 11월 서울 여의도 농민대회 연설 중 청중 쪽에서 날아온 달걀에 턱을 맞았습니다. 당시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쌀 수입 개방,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이때 노 전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들은 달걀 하나씩 맞아야 한다”며 연설을 이어나갔죠.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이던 2007년 12월 경기 의정부에서 선거 유세를 하다 “BBK 사건 전모를 밝혀라”라고 외치는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계란을 맞았고요. 이회창 당시 무소속 후보 역시 그해 11월 대구 서문시장에서 30대 남성으로부터 계란을 맞은 바 있습니다.
흉기 피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6년 5월 20일 흉기에 공격당한 사건이 대표적인데요.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열린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한 남성이 박 전 대통령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고, 박 전 대통령은 오른쪽 뺨에 11㎝ 길이의 자상을 입어 봉합 수술을 받아야 했죠.
그런데 이는 선거 판도를 뒤집은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수술받은 박 전 대통령이 측근에게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데요. 박 전 대통령은 퇴원 후 곧장 대전에서 선거 지원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에 열세이던 판도도 완전히 뒤집혔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2015년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찬 행사에서 남성 김모 씨에게 습격당했습니다. 김 씨는 강연장에서 한미연합사령부해체, 평화협정 체결 등 주장이 담긴 유인물을 사람들에게 배포하고 ‘전쟁훈련 그만해’라고 외치며 흉기를 휘둘렀죠. 살인미수, 외국사절폭행,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 씨에 대해 재판부는 “대한민국에 파견된 외국사절을 심각하게 공격한 최초의 사건”이라며 징역 12년을 선고했습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3월 7일 신촌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를 위해 선거 운동을 하던 중, 70대 남성에게 둔기로 수차례 폭행당한 바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이번 이 대표의 피습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유력 정치인을 향한 테러는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인데요. 특히 이번 이 대표의 피습은 총선을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사건의 배후가 있다’거나 ‘자작극일 것’이라는 등 황당한 주장과 가짜 뉴스가 나돌고 있기도 합니다. 한 극우성향 유튜버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지율이 오른 뒤 발생한 피습 사건”이라며 ‘한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을 막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고, ‘이 대표가 찔린 건 나무젓가락’이라는 가짜 뉴스가 범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부산경찰청에 마련된 특별수사본부는 3일 브리핑을 통해 이 대표를 공격한 김 씨가 소지하고 있던 흉기가 길이 17㎝, 날 길이 12.5㎝의 등산용 칼이며, 김 씨가 칼의 손잡이인 자루를 빼고 무언가로 감싸서 흉기를 개조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죠.
경찰은 김 씨가 경남과 부산 등을 순회하는 이 대표 방문지를 따라다닌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동선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향후 휴대전화 포렌식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피습이라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민주당 내홍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전망입니다. 여야 모두 제1야당 대표에 대한 흉기 피습 사건을 비판하고 이 대표의 쾌유를 바라는 상황에서 분열 일로로 달려가던 ‘야권 재편 시계’도 일단 멈출 거라는 건데요.
먼저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선언 및 당 혁신을 주장하던 비명(비이재명)계 모임 ‘원칙과상식’ 소속 의원들의 거취 결단 시점은 당분간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원칙과상식 의원들은 이르면 이날 이 대표에게 통합 비대위 수용을 촉구하는 뜻을 전할 계획이었습니다. 원칙과상식은 전날 이 대표 피습 후 입장문을 통해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 대표의 조속한 쾌유를 빈다”고 밝혔죠.
의사 출신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소 2주 이상 일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민주당 지도부 역시 당장 당무를 볼 수 없는 공백 시점에서 총선 대비 관련 주요 결정들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관위 정식 출범과 인재 검증 및 영입 등 당내 공천 관련 업무, 선거제 개편 논의 등 총선 전 진행돼야 하는 필수 일정들도 연기될 수 있죠.
다만 총선이 당장 3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이른바 ‘쌍특검 법안’(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법) 등 여부가 9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결정되는 만큼 이 대표가 병원에서 당무를 보는 ‘병상 정치’에 힘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분간 (당대표 권한) 대행을 세우는 것이냐’는 질문에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죠.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고 당 운영도 차질 없이 해나가겠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특히 이 대표 피습 사건 후속 대응을 위해 대책 기구를 내일(4일)까지 설치하기로 했는데요. 가짜 뉴스 등을 ‘2차 테러’로 규정해 법적·정치적 대응에 나서는 한편, 경찰의 수사 상황에 왜곡이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