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 최대 규모의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뚜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14일 JP모건에 따르면 8일부터 11일(현지시간)까지 나흘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개최 이래 최대 규모인 614개 기업이 발표했으며, 기업과 기업, 기업과 투자자 사이 1대 1 미팅 요청은 3만2000건을 기록했다.
올해는 개막 첫날부터 글로벌 빅파마들이 주요 성과 중 하나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과의 협업 사례를 언급, K바이오의 높아진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최고경영자(CEO)는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와 맺은 최대 17억 달러(약 2조2400억 원) 규모의 항체-약물 접합체(ADC) 후보물질 기술이전 계약 및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와 ‘리브리반트’ 병용 요법을 언급했다. 바스 나라시만 노바티스 대표는 종근당의 염증성 질환 신약후보물질 기술을, 크리스 뵈너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CEO는 오름테라퓨틱으로부터 ADC 신약후보물질을 도입한 점을 각각 말했다.
국내 기업은 바이오에서 전통 제약사, 디지털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발표 무대에 섰다. 행사의 핵심으로 꼽히는 메인 트랙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아시아태평양&중남미(APAC&LatAm) 트랙에는 SK바이오팜과 롯데바이오로직스, 유한양행, 카카오헬스케어가 발표했다.
8년 연속 JP모건의 초청을 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행사 둘째 날인 9일 존림 대표가 ‘혁신을 뛰어넘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일각에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의 공급 과잉을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의 성장은 2024년에도 견조하다”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국내 바이오기업 주도 네트워킹 행사 ‘코리아 나이트’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는 물론 해외 바이오기업 대표와 투자자들이 모여들면서 개최 이래 최대 인원인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회장은 “11년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참석하는데 매년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다”라면서 “첫날에 한국 기업이 4곳이나 언급됐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린 분야는 단연 ADC였다. ADC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을 표적하는 항체(Antibody)와 강력한 세포사멸 기능을 갖는 약물 (Drug)을 결합(conjugation)하는 기술이다. 약물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
머크(MSD), 길리어드, 애브비,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번 행사에서 앞다퉈 ADC 개발 현황과 계획을 공개했다.
국내 기업들도 뒤지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말까지 ADC 공장을 가동하고 위탁개발(CDO) 사업도 시작하겠다고 알렸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러큐스 사이트에서 내년 1분기부터 ADC 생산설비를 가동,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콘쥬게이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 중 고형암 ADC의 세부 정보를 내년 공개하겠다고 언급했다.
ADC 관련 빅딜도 공개됐다. 존슨앤드존슨은 차세대 ADC 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미국의 바이오벤처 암브릭스바이오파마를 20억 달러(2조6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비만·당뇨치료제로 잘 알려진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위고비’로 GLP-1 비만치료제 돌풍을 일으킨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물량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으며, ‘젭바운드’를 만든 일라이릴리는 후속 신약을 소개했다.
이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는 제약·바이오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오너 2·3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의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경영사업부 총괄 대표이사는 행사 사흘째인 10일 서 회장과 나란히 메인 트랙에 올라 본격적인 글로벌 행보를 시작했다. 특히 서 회장 대신 발표자로 나선 서 대표는 그간의 사업 성과와 통합 셀트리온의 핵심 성장전략을 소개하면서 “2030년 22개 바이오시밀러에 신약이 더해지면 현재 매출 대비 최소 5배 성장을 이룰 것”이라며 “셀트리온의 가치는 지금이 가장 낮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도 이번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본부장은 난달 그룹의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SK바이오팜에 따르면 최 본부장은 수십 건의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해 본부장 직무를 수행했다.
서 대표와 최 본부장은 나란히 코리아 나이트에 참석, 국내외 바이오업계 인사들과 네트워킹의 시간도 가졌다.
한편,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겸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대신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4’ 참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