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기차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여러 국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업계는 수요 둔화에 대응해 생산량을 줄이고, 전기차 가격을 인하하며 가격 경쟁에 들어갔다. 현재 상황만 보면 전기차 산업의 앞날에 악재가 켜켜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친환경차로 불리다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는 제2의 디젤차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쏟아진다.
하지만 속도가 조금 줄었을 뿐, 전기차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2022년 대비 29% 성장한 1400만 대 규모였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가운데 15.5%를 차지했다. 올해 예상 판매량도 1700만 대로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전기차 보조금 규모가 일부 축소됐으나 친환경차로 나아가야 한다는 각국의 정책 방향도 변함없다.
작금의 상황은 전기차가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기차의 단점으로 꼽히는 충전 시간과 주행 거리, 화재 위험성 등도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미국 소비자 매체 컨슈머리포트의 자동차 부문 수석 책임자인 제이크 피셔는 “전기차가 성장통을 겪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전기차 업계의 가격 경쟁 심화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전기차가 가격 조정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출혈 경쟁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업계의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내연기관보다 비싼 전기차의 가격 인하는 대중화를 위한 필수 과제다. 업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은 확대될 것이다.
전기차 대중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속도가 조절될지언정 언젠가 전기차 시장은 활짝 열릴 것이다. 준비돼 있는 기업이 기회를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점이 기대를 모은다. 전기차 산업이 성장통을 끝내고 가파르게 성장할 때, 국내 기업들이 그 수혜를 온전히 누리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