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전문위원ㆍ언론학 박사
지나친 공포는 과학적 대응력 훼손
호들갑 말고 ‘사회적 성장’ 다지길
며칠 전부터 질병관리청에 또다시 비상방역체계가 가동됐다.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독감이 창궐해서다. 여느 겨울철에도 마찬가지로 항상 유행하던 독감이지만 올해는 그 기세가 자못 심상치 않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환자 수가 7배를 넘는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거리두기 해제로 인해 사람들 간의 접촉이 증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마무리되면서 사람들의 개인 방역 또한 느슨해졌다. 독감과 함께 ‘노로 바이러스’가 동시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뉴스에서는 연일 독감과 마이크로 플라스마 폐렴 등 계절성 질환에 대해 비상이라며 난리 법석이지만, 일반 시민들의 분위기는 외려 차분하다. 식당과 상점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저마다 설 연휴를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미 몇 년 동안 지난한 코로나 팬데믹을 치러내고 얻게 된 ‘내공’ 덕분일 것이다.
이러한 내공과는 별개로 전염성 호흡기 질환에 관한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 몇 년 동안 환경과 질병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공포에 휩싸인 듯 종말론적인 주장들이 많이 나타났다. 일부는 ‘지구 면역 체계(Earth Immune System)’로 인해 코로나와 독감과 같은 질병들이 주기적으로 유행한다고 했다.
‘지구 면역 체계’는 지구가 하나의 유기체이며, 생물체와 같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면역 체계가 있다는 가설이다. 이를 따르는 몇몇 학자들은 백혈구가 바이러스를 파괴하듯이, 지구가 자신의 면역 체계를 통해 독감과 같은 질병을 유행시켜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인간을 파괴하려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과학적으로 명확히 증명될 수 없으며, 하나의 관점 내지는 사조(-ism)로 치부되던 ‘지구 면역 체계’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컨대, 인간의 산업 활동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인해 치명적 호흡기 감염 질환이 늘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의 기온과 습도 변화가 급격해졌으며, 이로 인해 바이러스의 전파와 전이가 용이해졌다는 설명이다. 이와 비슷하게 프로서(Prosser)와 그의 동료들은 생태계 파괴로 인해 코로나와 같은 신생 질병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자연 개발로 야생 동물의 보금자리가 파괴되어 인간이 키우는 가축들과의 접촉이 증대되고, 이로 인해 새로운 감염원이 출현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지구를 훼손하는 행동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새롭게 나타나거나 증대되고, 이로 인해 인류가 위험에 처했다고 얘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과응보라는 원시적 서사와 들어맞는 과학적 발견들이다. 이런 발견들은 코로나19의 대유행과 맞아떨어지며, 대중적인 공포와 염세주의로 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이런 전염병들을 지나치게 환경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불필요한 공포를 야기하고 과학적인 대응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염병들이 창궐하는 데에는 환경이나 인간의 활동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있으며, 인간의 대응 능력은 점점 향상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지난 수년간의 코로나 대유행은 세상을 휘갈기고 갔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내면이 성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는 공포와 비관을 동반한 ‘호들갑’은 전염병을 극복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어떤 바이러스가 오더라도 이런 포스트-코로나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독감 유행 또한 곧 찾아올 봄볕에 눈 녹듯 사그라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