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내복액’ 시각장애인도 읽는 의약품 포장 나온다

입력 2024-01-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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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39개 품목 점자 표시 의무화 앞두고 동화약품서 현장점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왼쪽)과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이 30일 충북 충주시 동화약품 공장에서 점자표시가 도입된 의약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

“상처가 난 곳에 연고인 줄 알고 엉뚱한 크림을 발랐어요.”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사용 환경을 묻자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고충을 털어놨다. 본지와 만난 그는 혼자선 제품명과 사용법을 식별하기 어려워 의약품 오남용이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사고는 점차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 7월부터 의약품 포장에 제품명의 점자 표시가 의무화되면서다.

30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이 사무총장은 충북 충주시 동화약품 공장을 방문해 점자 표시가 도입된 의약품들을 둘러보고 제약 업계와 의견을 나눴다. 동화약품은 2006년부터 자발적으로 일부 의약품 포장에 점자 표시를 도입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식의약 규제혁신 2.0과제’의 일환으로 다소비 의약품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음성정보·수어영상 도입을 추진했다. 올해 7월 21일부터는 안전상비의약품 및 식약처장이 정하는 의약품 포장에 제품명을 점자로 표시해야 한다. 진통제, 소화제 등 상비약 11개, 일반의약품 25개, 전문의약품 3개 등 총 39개 품목이 의무 표시 대상이다.

▲권철환 동화약품 개발기획팀 이사가 30일 충북 충주시 동화약품 공장을 방문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들에게 의약품 정보가 담긴 QR코드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그간 시각장애인은 혼자 의약품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유럽은 의약품명과 함량 등을 포장에 점자로 표시하도록 법률로 정했지만, 국내에는 이런 규정이 없어 소수 제약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점자 표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장애인의 건강권과 알 권리가 전적으로 기업의 의지에 달려있던 셈이다.

동화약품은 상처 치료제 ‘후시딘’을 시작으로 치질 치료제 ‘포스테리산’, 무좀 치료제 ‘바르지오’, 감기약 ‘판콜’ 등 총 11개 제품에 점자 표시를 새겨 넣었다. 포장 박스 윗면에는 제품명이, 아랫면에는 ‘연고’나 ‘내복액’ 등 제형이 표시됐다.

특히 판콜 포장에는 QR코드가 담겨있어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의약품 정보를 설명해주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권철환 동화약품 개발기획팀 이사는 “올해 5월까지 QR코드 테두리에 돌기를 도입해 시각장애인이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상휘 동화약품 공장장(오른쪽)이 30일 충북 충주시 동화약품 공장을 방문한 오유경 식약처장에게 병 제품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식품의약품안전처)

‘활명수’처럼 유리병에 담긴 제품은 2026년까지 3년간 여유를 두고 점자 표시 도입 방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종이 박스에 포장된 제품과 달리, 유리병에 변형을 가하면 내용물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동화약품을 비롯한 제약 업계는 병 포장에 품질 하락 없이 점자 표시를 도입할 기술을 연구하고, 진행 상황을 연 2회 식약처에 보고할 예정이다.

조상휘 동화약품 공장장은 “병 제품은 고속 회전하며 생산되기 때문에 병에 둘린 라벨에 점자를 도입하기는 무리가 있다”라며 “캡(뚜껑)에 점자를 새기면 가스가 새어 나올 우려가 있고, 점자를 새기기 위한 두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연주 사무총장은 업계를 독려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기업마다 제품의 디자인과 공정을 변경하는 데 큰 비용이 소요될 텐데, 점자 표시 의무화 정책이 안착하고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격려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업계를 향해 “국내 의약품 포장 박스는 대부분 코팅된 종이인데, 코팅이 없으면 점자가 훨씬 뚜렷해져 가독성이 높아진다”라고 조언했다.

이날 오유경 처장은 “선도적인 기업을 따라 앞으로 많은 기업이 점자 표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새로운 제도가 무사히 정착하고, 기업들도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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