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마약, 아무나 처방…뒷 일은 ‘나 몰라라’[STOP 마약류 오남용④]

입력 2024-02-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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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마약 처방, 교통정리 필요” [인터뷰]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만난 최종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가 의료용 마약류 처방 제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방금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들도 펜타닐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

의료용 마약류 사용 과정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전문성이 검증된 의사에게 처방을 허용해 오남용을 줄이고, 투약과 수거·폐기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병원 내 신경통증클리닉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하는 중증 통증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본지는 최근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의료용 마약류를 둘러싼 제도적 허점을 들었다. 그는 “대대적인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마약류 오남용은 늘어나고 환자들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면허를 취득한 의사라면 누구나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수 있다. 수련 과정 없이 바로 개원한 새내기 의사가 환자에게 ‘펜타닐’과 ‘졸피뎀’ 등을 처방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취통증의학과나 신경과처럼 중증 통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전공이 아닌, 타과 전문의도 의료용 마약류 처방에 제한이 없다. 동네 피부과, 소아과, 성형외과에서도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처방 자격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모든 의약품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문의도 임상 경험을 충분히 쌓지 않으면 의료용 마약류를 자신 있게 처방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처방 자격에 제한이 없어 의료용 마약류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일부 의료기관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라며 “미국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수 있는 센터를 지정하고, 전공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하면 메디케어(공공의료보험) 시스템에서 자동 누락되도록 규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료용 마약류 수거·폐기 전적으로 개별 의료기관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점도 문제다. 처방 이후 약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현재 최 교수가 재직 중인 아주대병원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마약류 진통제 사용 설명 및 서약서’를 자체 제작해 환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서명을 받고 있다. 해당 서약서는 다른 대학병원 교수들의 요청으로 학회를 통해 공유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의약품 관리 주의사항을 교육해야 하지만, 표준적인 규정이나 관련 수가가 정해진 바 없어 의사마다 제각각이다”라며 “병원에서 의지를 갖고 수거·폐기·교육에 투자하지 않으면 사실상 환자의 손에 들어간 약을 관리할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면, 중증 통증 환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환자들이 제때 필요한 만큼의 약을 처방받기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우려다.

그는 “처방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의료진에 대한 수사 의뢰도 증가하면서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하려는 의사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라며 “지금도 개원가를 둘러보면 의료용 마약류는 ‘골치가 아파서’ 처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 대형병원은 아예 의료용 마약류가 필요한 환자를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예방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현재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의료기관의 마약류 처방·투약 기록을 보고받는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운영하며 환자의 처방 기록을 확보하고, 중복 처방을 방지한다.

최 교수는 “NIMS나 DUR을 활용해 환자의 투약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서 오남용이 저절로 차단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정보만 제공해 놓고,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차단의 책임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떠넘기는 듯하다”라고 비판했다.

의료용 마약류를 적절히 사용하는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악의적으로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료용 마약류 처방을 요구하는 ‘마약 쇼핑객’에게 강경히 대응할 법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최 교수는 “통증의 강도는 환자의 주관적인 평가만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의사가 거짓말 탐지기처럼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다”라며 “실제로 마약 중독자는 의료진에게 약을 달라며 주먹질을 하거나 흉기를 들이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일정 기준을 초과한 환자를 대상으로 전산상 처방을 막거나, 의사에게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진료 거부권을 보장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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