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4·10 총선 지역구 공천에는 858명이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일 최종 집계에 따르면 전국 253개 지역구 중 242개 지역구에 공천 신청이 접수됐는데요. 242개 지역구 기준으로 따지면 평균 3.55대 1의 경쟁률입니다. 국민의힘은 5일부터 접수받은 공천 신청자 자료를 토대로 부적격자를 가려내고 후보별 경쟁력 여론조사도 할 계획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엿새간에 걸친 예비 후보자 면접 심사를 마무리합니다. 6일부터는 종합 심사에 앞서 1차 경선지역 후보자를 발표하는 등 공천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아직 지역구 후보자 희망 신청만 받은 시점이지만, 양측에서 나오는 잡음은 상당합니다.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여당 우세 지역에 대거 지원했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민주당이 위성정당 꼼수를 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양측 모두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이는 사실 예견된 일입니다. 그간 총선 때마다 수선스러운 정국이 연출됐기 때문이죠.
먼저 국민의힘과 관련해선 총선에 출마하려는 용산 참모들이 ‘꽃밭’에 대거 공천을 신청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실 인사들이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같은 여당 우세 지역에 나가 비교적 수월하게 공천을 받아내려고 한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이 4일 공개한 지역구 공천 신청자 명단을 보면 대통령실 참모 출신 중 서울 강남권이나 TK, PK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은 서울 강남구을에 공천을 신청해 현역인 박진 의원과 맞붙게 됐습니다. 박 의원도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외교부 장관을 지낸 핵심 인사인데요. 김은혜 전 홍보수석비서관은 여당이 우세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을에 공천을 신청했으며,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에 지원했죠.
윤 대통령 ‘복심’으로 불린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 역시 경북 구미을에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하태경 의원이 서울로 출마하면서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은 부산 해운대구갑에 지원했는데요. 박지형 전 해운대구청 자문변호사, 전성하 전 부산시 투자유치협력관, 박원석 코레일유통 이사도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해운대갑은 부산에서도 여당 세가 가장 강한 곳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서울 중랑을엔 이승환 전 대통령실 행정관, 서울 도봉갑에는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단독 지원했고요. 박성훈 전 국정기획비서관(부산진구갑) 등 핵심 참모들도 대체로 험지보다는 여권 지지세가 강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반면 지지세가 미약한 호남 28개 지역구(광주 8, 전북 10, 전남 10)에는 신청자가 21명에 불과합니다. 평균 경쟁률은 0.75대 1로, 이 가운데 10개 지역구(광주 3, 전북 4, 전남 3)에는 신청자가 아예 없었죠.
대통령실 출신들의 공천 특혜 논란이 확산할세라, 대통령실은 5일 대변인실 명의의 언론 공지를 내고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여당 우세 지역에 지원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다시 한번 입장을 밝힌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누구도 특혜받지 않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을 당에 누차 당부한 바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공천 심사 마지막 날인 4일 공천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윤심’이 공천과 무관치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 비대위원은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놓고 “경중을 따지자면 분명히 ‘디올 백’은 심각한 사건”이라고 지적한 바 있죠.
더불어민주당 쪽에선 ‘통합’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했는데요. 이날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30분가량 차담을 한 뒤 지도부 등과 함께 오찬 회동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총선 전략과 공천 문제를 비롯해 선거제 개편 등 다양한 정치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특히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내 통합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죠.
이번 회동이 눈길을 끈 건 친문(친문재인)계와 친명(친이재명)계의 공천 갈등이 커지는 와중에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친문계 현역 의원의 지역구에 친명계 인사들이 잇달아 도전장을 던지면서 ‘자객 공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민주당의 신구(新舊) 권력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죠. 최근에는 원외 인사를 중심으로 노영민·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요구가 커지면서 이 주장에 힘을 더했습니다.
또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 대표의 결정에 따라 준연동형 비례제로 당론을 정하면서, 이변이 없는 한 현행 제도대로 총선을 치르게 됐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민주당은 그간 준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놓고 고심해오다 당론 결정 권한을 이 대표에게 위임했고, 이 대표는 5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며 군소정당들과 함께하는 통합형비례정당(준위성정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직전 21대 총선 때 처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제는 47석의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의 경우 지역구 선거 결과 및 정당 득표율을 함께 반영해 배분하는 제도입니다. 지역구 의석수가 전국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식인데요. 나머지 17석은 지역구 선거 결과와 연동하지 않는 병립형으로 채우게 되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다는 취지로 당시 여당과 소수 정당들이 힘을 합쳐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도입했지만, 일반 유권자는 표 반영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고 거대 정당들이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애초 도입 취지도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63석,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84석을 각각 차지했고, 두 정당의 비례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각각 17석, 19석을 가져갔는데요. 군소정당은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에 그친 바 있죠.
‘위성정당 금지법’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 없이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서, 정치권이 꼼수 위성정당 난립을 방치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는 “기존 양당 독점 정치구조와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대화하는 망국적 발상”이라며 “제3의 정치적 견해마저 양당 카르텔에 편입시켜, 정치적 다양성을 억누르고 정치적 양극화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죠.
과거 공천에서 화제가 된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16대 총선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영남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김윤환, 이기택 등 중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이때 ‘공천 학살’이라는, 다소 과격한 말까지 나왔지만, 한나라당은 원희룡, 오세훈 등 새 인물을 적극적으로 수혈하면서 제1당 자리를 차지했죠.
18대 총선에선 친이(친이명박)계의 공천 주도로 친박(친박근혜)계가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는데요. 4년 뒤엔 친박계의 ‘보복 공천’이 연출됐습니다.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당시 여당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246곳 중 무려 47곳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했는데, 공천 탈락이 친이계에 집중된 겁니다.
20대 총선에서는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 결과에 반발해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장에 날인을 거부하는, 이른바 ‘옥쇄 파동’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옥새 파동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탈당, 친박 의원들의 세 과시 등이 맞물리면서 중도층의 표심을 악화했고, 결국 새누리당은 1석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에 1당을 내줘야 했죠.
이같은 움직임은 공천 결과가 곧 의석수로 이어지는 정치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 한편, 공천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자아냅니다.
각 당은 매번 계파 청산, 혁신, 물갈이 등 ‘쇄신’ 의지를 강조하면서 총선에 임하곤 합니다. 18대부터 21대 총선을 분석해보면, 쇄신 폭이 높은 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21대 총선을 제외하곤 현역 교체율이 높은 당이 승리했는데요. 그만큼 유권자들의 양당에 대한 불신이 크고,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이 높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민심을 흔드는 건 여야의 진정한 쇄신 의지라는 거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치권은 현역 의원 물갈이를 내세우지만, 극심한 양극화와 진영 대립으로 정당 내 민주주의가 무너져 지도부 입맛에 후보 줄 세우기, 챙겨주기 등 구태 공천이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면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정쟁에 매몰되지 않도록, 각 당이 높은 역량과 도덕성을 갖춘 후보 공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