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 내용은 ‘살인자ㅇ난감’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인자 난감? 살인 장난감? 살인자 이응 난감? 살인자 오 난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한 이 시리즈물의 이름은 ‘살인자ㅇ난감’이다. 작가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작품을 다양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제목에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작품 속 장남감 형사(손석구 분)의 마지막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살인자 난감’으로 이탕(최우식 분)과 노빈(김요한 분)의 무차별적이고 무법적인 살인이 기억에 남는다면 ‘살인 장난감’으로 읽게 되는 것이 그 예시다.
‘살인자ㅇ난감’은 평범한 대학생 이탕이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면서 시작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이탕은 선을 넘는 진상 손님을 향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 때 이탕이 손님을 죽였다는 증거가 발각됐더라면 그의 살인 행위가 한 번에 그칠 수 있었을까. 운이 좋게도(?) 이탕은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증거가 남지 않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하필 이탕이 범행도구를 챙기던 순간 CCTV에 파리가 앉아 CCTV 상에 이탕의 모습이 남지 않더니 사건 현장에 흘리고 간 범행 도구는 지나가던 개가 물어갔다. 더 나아가 사람을 죽이고 보니 죽이는 사람마다 족족 보험 사기범, 연쇄살인마, 친족살인범, 학교폭력범 등 ‘사회악’으로 치부되는 악인들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의도치 않게 악의 무리를 처단하게 된 이탕은 점차 자신의 살인 행위가 ‘영웅적 행위’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악인들을 죽이는 이탕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당한 살인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단순히 주인공이 살인을 반복해 저지르는 자극적인 작품이 아니라 ‘죄와 벌’에 화두를 던지며 정의와 선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메시지, 연기, 연출, 음악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탓일까.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공개와 동시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국내에서는 공개와 동시에 차트1위를 휩쓸었으며 공개 3일 만에 310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비영어 TV 부문 차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살인자ㅇ난감’은 살인 콘텐츠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OTT 플랫폼의 부흥과 함께 ‘킬러’, ‘연쇄살인’, ‘서바이벌 게임’ 등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살인 사건이 핵심 소재가 아닌 작품이라도 주인공의 과거나 작품 내 에피소드 중 살인 사건이 한 건 정도는 기본적으로 등장할 정도다. OTT를 통해 공개되는 콘텐츠의 경우 비교적 수위 제약이 적다는 점과 사건을 생생하게 연출할 제작비가 충분하다는 점, 시리즈물을 시청하는 주요 시청자층의 취향, 자극적인 콘텐츠의 경우 기대 수익성이 높다는 점 등이 콘텐츠 생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K콘텐츠의 지평을 넓히며 한국 시리즈물의 새 역사를 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도 거액의 상금을 건 서바이벌 게임에서 탈락한 자는 모두 사살된다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전도연이 킬러로 등장하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역시 사람을 죽이는 킬러를 핵심 인물로 하고 있으며 요즘 ‘살인자ㅇ난감’과 함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도 수상한 킬러들의 표적이 된 조카 ‘지안’의 생존기를 다루고 있다.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 및 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유정 (연합뉴스)
살인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의 인기는 영화·드라마 시장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게임 업계에서도 살인 콘텐츠는 인기다. 지난해 게임 업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 내 인기 게임 TOP10에 해당하는 게임 중 4개가 총이나 칼로 상대를 죽이는 게임이었다. 과거에도 총이나 칼로 상대를 죽이는 게임은 있었지만, 과거 유행한 게임은 생동감 측면에서 그래픽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의 게임을 따라잡을 수 없다. 더 나아가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도 살인의 콘텐츠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매체가 증가하고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일부 언론이나 유사 언론,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실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거나 재생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유정 사건 보도에서 이러한 행태가 두드러졌다. 많은 언론사가 정유정의 범죄 행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사 제목에 ‘경쾌하다’, ‘소풍 가는 것처럼’ 등의 표현을 더했다. 정유정의 범죄 행위를 ‘여성’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고유정과 연결해 두 사건이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이에 더해 일부 매체는 정유정이 범죄 행위를 벌이는 데 과외 앱을 활용했다는 점을 과대 해석해 마치 추리 소설을 집필하듯 정유정의 범죄 행위 중 일부를 부각해 콘텐츠화하기도 했다.
물론, 미디어를 통해 폭력 장면을 빈번하게 소비한 콘텐츠 소비자의 폭력성이 현실에서 발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게임 업계에서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게임 업계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이 대상에 대한 긍정 ·부정 인식에 기여한다는 ‘단순노출 효과’와 미디어가 폭력적인 사건을 빈번하게 보도하면 시청자들 역시 세상을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높아진다는 ‘배양이론’을 고려할 때 살인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가 보편화된 오늘날의 미디어 행태가 콘텐츠 소비자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특히, 신체, 인지, 감정, 사회성이 급격하게 발달하는 청소년기에는 미디어 노출과 자극적인 알고리즘 형성이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에 미국 뉴욕시는 14일(현지시간) 청소년들이 콘텐츠를 주요 소비하는 소셜 미디어 유튜브, 틱톡 등에 청소년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k 콘텐츠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잘 팔리는’ 콘텐츠 생산 공식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