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AI’입니다. 특히 AI의 최대 수혜주로 불리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폭등세는 블록버스터급이죠.
엔비디아가 21일(현지시간) 장 마감 후 발표한 지난해 4분기(10월~12월)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매출은 221억 달러(29조5035억 원), 주당 순이익은 5.15달러(6875원)로 나타났습니다. 매출은 시장조사기관 LSEG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206억2000만 달러를 웃돌았고 주당 순이익도 전망치 4.64달러를 뛰어넘었는데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265%, 총이익은 122억9000만 달러로 무려 769% 급증했죠.
엔비디아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16% 이상 급등했습니다. AI 영역을 주도해온 엔비디아의 실적은 전체 지수의 방향을 가늠할 지표로 간주돼왔는데요. 시장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투심이 쏠린 겁니다.
이에 힘입어 다우지수는 22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전날보다 456.87포인트(p)(1.18%) 상승한 3만9069.11로 거래를 마감, 처음으로 3만9000선을 돌파했습니다. S&P500지수도 전장보다 105.23p(2.11%) 증가한 5087.03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고, 나스닥지수는 4거래일 만에 반등하면서 460.75p(2.96%) 뛴 1만6041.62를 기록, 2021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1만6000선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죠.
엔비디아 외에도 AMD, 브로드컴 등 다른 AI 관련주들도 10% 이상 상승했는데요. 반대로 시원찮은 주가 흐름을 보이는 종목들도 있습니다. AI 관련주들의 등장 전까지 시장을 주도해온,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M7)로 불리던 종목들도 희비가 엇갈린 모습입니다.
AI 열풍 전까지 증시를 주도하던 건 M7입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증시를 대표하던 7개의 빅테크 기업을 M7로 일컫는데요. 실로 지난해와 올해 초 미국 증시의 상승 랠리는 대부분 M7 기업들의 주도 아래 펼쳐졌습니다. 지난달에만 M7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수익률의 약 45%를 차지했죠.
그런데 최근 M7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M7 기업들의 주가가 엇갈린 흐름을 보인다는 사실을 근거로, 주가가 부진한 주식은 M7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건데요. 여기서 더 나아가 M7의 시대는 끝났다는 일침까지 나왔습니다.
미국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헤지펀드 사토리 펀드의 설립자인 댄 나일스는 최근 흐름을 고려했을 때 “M7 중 엔비디아, 메타, 아마존, MS만 추려 ‘판타스틱4’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M7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존스 트레이딩의 수석 기술 전략가 마이크 오루크도 미국 증시에 대한 M7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했다고 평가하며 “M7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못박았는데요. 그는 ‘M7 시대의 명복을 빕니다’(R.I.P the Magnificent Seven Era)‘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M7 기업들의 분절화 현상을 지적하며 “M7 기업들이 더 이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로 엔비디아와 메타 주가는 실적 발표 당일 각각 16%, 20% 급등하는 등 지난해에 이어 강세를 이어갔지만, 테슬라와 애플 주가는 올해 들어 각각 22%, 1.45% 하락했습니다. 구글도 시장 평균을 하회하는 수익률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M7로 묶인 7개의 종목이 모두 같은 주가 흐름을 보이지 않자, 시장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M7 종목 중 AI 산업과 연관된 엔비디아, MS에 TSMC, 브로드컴, AMD 등을 포함한 ‘AI5’가 부상한 겁니다.
없어서 못 파는 AI 반도체와 달리, 급격히 둔화한 수요에 맥을 못 추는 기업들의 주식도 있습니다. 바로 전기차인데요. 한때 ‘테슬라 대항마’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차지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들은 나날이 급락하는 주가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주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픽업트럭 제조업체 리비안은 전주 대비 38% 급락한 주당 10.06달러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고급 세단 전기차를 만드는 업체인 루시드 역시 같은 기간 주가가 19% 하락했죠.
이들 기업은 최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올해 생산량이 작년 수준에 머물거나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데다가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 부진,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전기차 수요가 둔화한 탓입니다.
R.J. 스카린지 리비안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인도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수요를 늘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금리인상에 따라 매월 지불해야 할 자동차 할부금 부담이 커진 것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피터 롤린슨 루시드 CEO도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생산에는 제약이 없다는 것이며, (제약되는 건) 판매와 인도”라며 올 한해 잠재적 고객을 찾기 위한 영업활동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차량 인도를 기다리는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더욱 늘리겠다던 것과 대비된다고 WSJ은 지적했죠.
이미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가격을 낮추거나 관련 투자를 꺼리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WSJ은 “스타트업은 기성 자동차 업체에 비해 전기차 시장의 갑작스러운 냉각에 더욱 크게 노출돼 있다”면서 “(전기차) 매출 둔화를 버텨낼 수익성 있는 (다른) 사업이 부재한 까닭”이라고 짚었는데요. 리비안의 현금 보유고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79억 달러(약 10조5000억 원)로 1년 전(116억 달러·약 15조4000억 원)보다 크게 감소했습니다. 루시드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도 14억 달러(약 1조8000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3억6500만 달러(약 4800억 원) 줄었죠.
다만, 두 회사는 현재 보유한 현금이 2025년까지 사용 가능한 규모라고 강조했다고 WSJ은 부연했습니다.
테슬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의 전기차 수요 부진,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약진에 따라 최근 영 시원찮은 주가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테슬라는 23일에도 뉴욕증시에서 전거래일 대비 2.76% 하락한 191.8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마켓인사이더는 AI 열풍으로 인해 AI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종목이 비교적 부진한 주가를 보인다며, 시장이 테슬라를 AI 기업보다는 핵심 사업인 자동차 제조 기업으로 여긴다는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M7 이전에 시장의 주목을 받은 건 FAANG이었습니다. S&P500 종목 중 메타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알파벳 등 혁신적인 기술 기업들을 FAANG으로 일컬었죠.
2021년까지만 해도 FAANG의 상승세는 대단했습니다. 시장이 이들 종목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주가도 크게 상승, 증시까지 견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는데요. 그러나 2022년엔 어느 때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당시 한 해 동안 메타는 64%, 넷플릭스는 51% 하락하면서 주가가 반토막 났습니다. 나머지 3개 기업도 최고 27% 이상 주가가 하락했죠. 이들 기업의 하락세로 S&P 500지수도 타격이 불가피했는데요. 당시 하락 폭은 19%로,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부진한 주가를 보이던 이들 주식은 반등엔 성공, 우상향 곡선을 그려오긴 했으나 AI5의 상승세를 따라잡진 못하는 모양샙니다.
월가에서는 AI 관련주들의 중장기적인 상승을 점치고 있습니다. 시장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고, 높아진 순이익으로 밸류에이션 매력은 높아져 지금까지 이어온 급등세에도 지속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는 건데요. 특히 대표적인 AI 수혜주 엔비디아에 대해선 “아직도 싸다”며 급등한 현 가격조차 매력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WSJ이 취합한 월가 애널리스트 55명 중 43명은 엔비디아 주식에 대해 ‘매수’(Buy) 의견, 8명이 ‘비중 확대‘(Overweight)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전체 92.7% 분석가가 모두 엔비디아 주식을 더 사라고 권하고 있는 셈인데요. ‘보류’(Hold) 의견은 4명에 불과했고, ‘비중 축소‘(Underweight)나 ‘매도’(Sell) 의견은 단 한 명도 없었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가속 컴퓨팅과 생성형 AI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변곡점)에 도달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기업, 산업, 국가 전반에 걸쳐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AI 산업으로 전환 과정은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습니다. AI 열풍에 더욱 힘을 싣는 발언이었죠. 많은 전문가 역시 AI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가 올해도 지속될 것이며, 이에 따른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빅테크나 반도체 관련 주식이 이후에도 주도주 위치에 굳건히 자리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다만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경기 순환(cycle)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 매출 증가율을 보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3~4년마다 매출이 한 번씩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올해 주도주인 엔비디아가 내년까지 급등할 것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는 겁니다. 여기에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등으로 매출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