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결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핵심은 기업의 자율성에 기댄 가치 제고다. 정부는 각종 유인책을 펼친다. 인센티브, 세정 지원과 함께 우수 기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관련 지수 및 상장지수펀드(ETF)를 연내 출시한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감안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행동지침)도 개정한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등의 방안도 있다.
한국 증시는 양적 성장에 비해 주가 수준이 낮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증시(코스피·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은 2558조 원으로 세계 13위권이다. 반면 주식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5배에 그쳤다. 순자산의 장부가치 수준에서 주가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미국(4.55배)은 물론이고 선진국 평균(3.10배)에 크게 못 미친다. 대만(2.41배), 인도(3.73배) 등 신흥국 평균(1.61배)보다도 낮다. 코스피 상장사 526개(65.8%)가 PBR 1배 이하를 나타내고 있다. 자산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정상과 거리가 멀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를 바로잡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앞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발언과 금융위의 연초 도입 발표에 국내외 눈길이 몰렸다. 행동도 촉발됐다. 블룸버그통신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10조 원 넘게 한국 주식시장에 들어간 것으로 추산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9년 이래 최대 유입액이라고 한다.
문제는 어제 공개된 실체가 좋은 평가를 받기에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 감마저 없지 않다. 시장은 ‘맹탕 밸류업’에 실망감을 표출했다. 보험·금융·증권·운수장비 등 저PBR 업종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대량 매도세로 코스피 지수가 장중 한때 2640선마저 위협받았다.
시장이 체감할 수 있는 적극적 발상과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강력한 기업 세제 혜택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최고세율 60%에 달하는 약탈적 상속세도 크게 손봐야 한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기업에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대책도 불가결하다.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일이다. 기업이 자사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환경을 내버려둔 채로는 백약이 무효다.
미국과 일본 증시는 역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우리만 잠잠하다. 우리 기업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귀책사유는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진정한 밸류업을 원한다면 시장경제와 개별 기업들을 옥죄는 족쇄와 재갈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다. 선후와 완급을 헤아리는 혜안이 필요하다. 정치 권력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대신 ‘표창장 수여’, ‘모범 기업 우대’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백 년이 가도 해소될 수 없다. 지금 시장이 목말라하는 것은 응원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