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계약서의 중요성

입력 2024-03-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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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부 박꽃 기자

성범죄나 경제범죄처럼 혐의가 중대한 형사소송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 속 법정물처럼 치열한 법리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꽤 많지만, 실제 서초동 법원에서 열리는 일반인들의 소송은 대부분 경제적인 손실의 책임을 다투는 민사소송이다. 이때 재판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게 양측이 사전에 작성한 계약서다.

아무리 큰 소송금액이 걸려있는 사건이라도 명백한 계약서가 존재한다면 재판부는 그 내용을 토대로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이야기 맥락을 파악해보면 한 쪽이 다소 억울할 수 있겠다 싶을지라도 재판 자체는 2~3회 만에 종결되는 경우도 많다.

민사소송상 계약서의 지위는 그만큼 엄중하다. 최근 쿠팡시리즈 '안나'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주영 감독이 ‘부당한 편집’을 문제삼으며 쿠팡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한 이유도 계약서 영향이 컸다. 재판부는 “쿠팡은 프로그램에 관한 모든 권리의 유일한 독점적 소유자이다”와 같은 강력한 권리조항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정부와 헬리콥터정비 계약을 체결한 유아이헬리콥터가 올해 초 재판에서 진 이유도 계약서 문제였다. 정비에 필요한 미국회사 부품이 단종되는 등 부득이한 이유로 납기가 지연됐지만, 재판부는 그에 따른 수정계약서를 다시 쓰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유아이헬리콥터가 일부 지체상금(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 이행을 지체한 계약자에게 부과하는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재판까지 갈 일이 있겠나’ 싶겠지만, 법정에서 만나는 대부분 원고와 피고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다 그 자리까지 왔다. 때문에 회사의 업력과 개인의 경력을 걸고 규모 있는 계약을 체결할 땐 변호사의 계약서 검토 서비스 이용을 고려해볼 만하다.

업계 특수성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손해 상황을 명시하고 그에 따라 책임여부를 명확히 하는 내용이 기재될수록 좋다. 콘텐츠업계라면 제작이나 편집 중 이견이 발생할 경우 최종결정권 문제, 제조업계라면 불가피한 이유로 납기가 지연될 경우 지체상금 문제 등을 정교하게 다뤄야 한다. 계약서 검토에 드는 비용에 잠시 멈칫할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찾아올지 모를 큰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료라고 보면 망설일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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