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반덤핑 제소 ‘고심’
“눈치 보지 말고 정부 나서야”
저가 수입 강판 공세에 시달리는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 수출 관세 인상이라는 거대 암초를 만났다. 유럽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무역 장벽이 공고해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최근 중국산과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철강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열연강판은 422만2000톤(t)에 달한다. 이는 전년(339만5000t) 대비 24.4% 증가한 규모로 중국산은 179만t, 일본산은 221만7000t을 수입했다.
중국산과 일본산은 각각 전년 대비 수입량이 26.0%, 29.9% 늘었다. 양국이 전체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4%, 52.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은 건설경기 침체로 자국에서 소비하지 못한 열연강판을 저렴하게 해외로 넘기고 있다. 일본은 엔저를 등에 업고 저가에 수출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의 경우 싼값에 국산 품질을 따라잡기 시작해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품질도 떨어지고 선주들도 꺼렸는데 최근엔 품질도 좋아지고 있고, 공급망 다변화라는 전략적 측면에서도 필요한 옵션”이라고 밝혔다.
수입산 열연강판은 국산보다 5~10% 싸게 유통된다. 1월 말 기준 국내산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86만 원, 수입산은 톤당 82만 원이었다. 철강업계는 수입산 열연강판이 지나치게 싼값으로 국내 시장에 침투해 시장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중국산, 일본산 등 수입 열연강판에 대한 덤핑 조사 신청을 검토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예고했다. 우리나라의 값싼 전기요금을 사실상 정부 보조금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자국에 수출한 2022년산 후판(두께 6㎜ 이상 철판)에 각각 2.21%, 1.93%의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예비판정 결과를 발표했다. 전기요금 관련 반덤핑 마진율은 현대제철 1.47%, 동국제강 1.61%로 상계관세율의 66~83%를 차지한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직ㆍ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된 품목이 수입국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초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수입 당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미국은 지난해 8월에도 한국 후판에 대한 상계관세율을 기존 0.2%대에서 1.08%로 인상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보조금에 해당한다’는 이유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국 철강업계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강업계는 우리 정부가 미국 눈치만 살필 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관세 부과 범위가 점차 넓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반해 멕시코 정부는 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 움직임을 보이자 라켈 부엔로스트로(Raquel Buenrostro) 경제부장관이 나서 ‘보복 조치’를 언급할 정도로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