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미래IT부장
미중 명운건 기술패권戰 치열한데
한국은 민간기업에 의존·기술 정체
정부 앞장서 강력한 지원 펼쳤으면
전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알고자 한다면 ‘돈의 흐름’을 보라 했다. 올해 초 미국 증시가 인공지능(AI) 등 혁신기술로 무장한 빅테크 기업 주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AI 관련 7개 기업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의 시가총액은 15조1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애플·알파벳(구글 모회사)·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 등 M7은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종목이 연초 이후 강세 랠리를 펼쳤다.
그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질투의 여신 ‘인비디아’에서 이름을 땄다는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눈에 띈다.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한국 국내총생산(GDP) 1조7000억 달러를 넘는 2조 달러대에 달했다. AI 열풍이 시작되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잭팟을 터뜨렸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5% 늘어난 221억 달러를 기록했다. 직원 절반이 연봉 3억 원 이상이라는 보도도 시선을 끌었다. AI가 돈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AI 기술 봉쇄에 맞서는 중국은 어떠한가.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기술 자립을 이루고 이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AI+ 행동’을 내놓고 반격을 선언했다. 중국 정부가 2010년대 인터넷을 산업 전 영역으로 확장하는 ‘인터넷+’라는 개념을 쓴 적이 있지만, ‘AI+ 행동’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대중국 ‘AI 제재’가 날로 강력해짐에 따라 AI 경쟁력에서 중국이 미국에 밀려나고 있다는 평가가 부상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2022년 20차 중국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AI를 최대로 활용한 지능화 전투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양국의 AI 쟁탈전은 국가대항전이다. 이에 미·중 기술패권의 종착역은 AI로 설정될 것이다. AI는 산업을 넘어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AI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모든 분야에서 패권 다툼의 소재가 된다. AI의 특성상 경쟁력을 갖추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기술혁신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번 다른 국가와 격차가 생기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국가 기간 산업으로 설정한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AI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의 기술격차는 1.3년, 중국은 0.9년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추론·지식 표현 분야에서 초거대 AI의 트렌드에 맞춰 인지도를 높이고는 있으나, 실질적인 기술적 진보나 응용 사업화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네이버, 카카오브레인 등 국내 대기업 중심으로 생성형 AI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선도국 대비 뚜렷한 성과 사례가 없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에만 의존하는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정체된 상황이다.
AI 쟁탈전은 국가대항전이다. 우리 기업이 초거대 AI를 개발하는 데 광범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미국, 중국 등 경쟁국처럼 정부가 앞장서야 없다. AI가 접목된 일상의 변화는 말만으로는 실감 나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는 AI와 같은 기술력이 우리의 일상 공간과 의식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느끼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네이버 1784’다.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 최첨단 기술융합의 테스트베드, 세계 유일의 로봇 엘리베이터…. AI와 로봇 기술이 집중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곳 방문을 통해 AI 연구개발(R&D) 투자 전략, 인재 육성, 규제 완화 등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해 본다.a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