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개인적 사직’, 본질은 파업…업무개시 명령 ILO 협약 위반 아냐

입력 2024-03-1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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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집행정지 소송, 원고적격·처분성 결여…“의사들, 섣불렀다”

▲(왼쪽부터)이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 임무영 임무영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 (사진제공=신현영TV)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해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법적 시비를 가리고 나섰지만, 이들이 주장을 관철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의료대란 관련 법적 쟁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이민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 임무영 임무영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김소윤 한국의료법학회장이 참석해 최근 전공의들의 사직과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법률적 문제를 검토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으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게는 면허정지 3개월 처분을 시행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국제노동기구(ILO)에 한국 정부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며 긴급 개입을 요청했다.

앞서 5일에는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의대 증원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의료법 따라 업무개시명령, ILO 협약 위반 아닐 것

법률 전문가들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ILO 협약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작다고 봤다.

한국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ILO 협약 29호를 2021년 4월 비준했다. 해당 협약 제2조 1항에서는 강제노동을 ‘어떤 사람이 처벌의 위협 하에서 강요받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조 2항은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나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강제노동 적용의 제외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임 변호사는 “강제근로 해당하지 않는 긴급한 경우에는 강제근로 금지 적용을 제외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이 ILO 협약에 위배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 역시 “강제근로 금지 조항은 의사의 의무, 변호사의 의무, 군사적 의무, 통상적인 시민의 의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은 예외 사항으로 하고 있다”라며 “의료법 위반으로 인한 면허 정지나 취소 등은 협약 위반이라고 인정되기 어렵다”라며 선을 그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서비스 중단을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했으며,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한, ILO 제29호 협약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의 적용 제외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소송요건 못 갖춰 각하될 것

의대 교수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막기 위해 제기한 집행정지 소송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소송은 소송물과 관련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제기할 자격 ‘원고적격’이 있다. 또한, 행정청이 구체적 사안에 대해 법을 집행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처분’에 대해서만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원고적격이 없어,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임 변호사는 “소가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원고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의대 교수들이 아니라 현재 재학 중인 의대생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학생들은 의대 증원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을 처분으로 보기 어려우며, 실제로 의대 증원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진행된 바가 없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이 변호사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려면 소송 대상의 처분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단지 정책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처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현재 정부가 실제로 의대를 증원한 것이 아니고, 증원하겠다는 계획만 발표한 상황이다”라며 “존재하지도 않는 행위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의료계가 너무 섣불리 신청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전공의 대거 이탈, 개별 사직 아닌 ‘파업’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은 파업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의사 단체들은 전공의들이 개인적인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집단 사직’이나 ‘집단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전공의들의 사직이 파업으로 인정되면, 이와 관련된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는 의료법뿐 아니라 노동관계법이 적용된다. 불법파업이나 업무방해죄 등의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변호사는 전공의들의 대거 이탈이 ‘개별적 행동’이라는 주장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파업의 주체가 되는지, 사직이 쟁의행위성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개인적인 사직이라고 하는 것은 현 사태의 핵심을 보지 않고 형식적인 부분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의 행위에 대해 “본질은 사직서 제출을 통한 파업과 진료거부“라며 “사직이 아니라 파업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의 진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사직한 것은 맞지만, 실제 병원으로 돌아올 의향이 없으면 개인적인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현재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의 최소 60%는 병원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을 것”이라며 “개원해서 미용 시장으로 가거나,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활동하지 절대로 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렇다면 이들은 이미 사직을 한 상태이지 파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까지 들고나온 의사들의 심정 들여다봐야

김 회장은 전공의들과 의대 교수들이 국제기구와 법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에 주목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 의사들을 참여시키지 않았고, 소통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의사들이 법원까지 갔다는 것은, 행정부와 이해 당사자 간에 논의 구조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라며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들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사기를 저하하는 내용을 발표한 것은 정부가 먼저”라며 “프로세스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전공의 파업에 대해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한 정황이 있는데, 의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증원 정책 발표를 들었다”라며 “정부의 이런 태도를 젊은 세대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가만히 앉아 수긍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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