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한류 팬(동호회원)이 처음 2억 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어제 전해졌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발간한 ‘2023 지구촌 한류 현황’에 따르면 한류 팬은 지난해 12월 기준 2억25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말로 K팝을 따라 부르는 한류 팬이 1억 명대에 처음 진입한 것은 2020년이다. 그 숫자가 3년 만에 곱절이 됐다. KF의 ‘한류 현황’이 처음 발간된 2012년의 924만 명에 비하면 24배 급증세다.
국력을 상대 비교할 수 있는 간명한 척도는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 지표다. 국방비 등의 보조 지표도 중시된다. 그러나 유무형의 문화 역량이 특정 국가의 숨겨진 자산 노릇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경우도 많다. 현대 국가 중에선 프랑스, 영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GDP, 국방력 지표도 압도적이지만 문화 헤게모니로도 지구촌을 아우른다.
‘2억 명’ 수치가 등장한 한류 열풍은 그래서 더 놀랍다. 지난 세기 전쟁과 가난의 기억을 뒤로하고 전 세계 식민지를 운영했던 대제국의 후예들과 함께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성장세를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한반도 자연 경계는 협소하지만, 문화 경계는 전 세계를 덮을 만큼 광활하다. 참으로 대견하다.
KF 현황에 따르면 세계의 한류 동호회는 1748개로 2012년 757개 대비 2.3배 늘었다. 한류 영향력이 가장 큰 지역은 아시아·대양주로 582개 동호회에 1억4900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 전체 한류 팬의 약 66%다.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곳은 미주 지역이다. 멕시코의 한류 팬은 2780만 명이고 미국은 1067만 명이다. 국가별로는 각각 2위와 4위다. 1위는 약 1억 명 규모인 중국이다.
KF는 최근 양상에 대해 “글로벌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주된 기반은 K팝이다. 지난해 파악된 동호회의 68%가 K팝 동호회라고 한다. 4세대 걸그룹으로 지목되는 뉴진스와 르세라핌은 그제 일본 레코드협회가 시상하는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에서 각각 2개씩 상을 챙겼다. 트와이스는 최근 미국 빌보드 종합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앞서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BTS 노래가 빌보드 정상을 누빈 기억도 생생하다. 쾌거가 줄을 잇는다.
국가적 숙제도 없지 않다. 한류 열풍에서 어찌 국민 모두가 체감할 만한 실익을 일궈내느냐는 과제가 있는 것이다. 열풍이 식지 않게 관리할 책무도 무겁다. 한류가 2017년부터 5년간 수출 신장을 통해 유발한 경제적 효과가 37조 원이란 한국경제연구원의 지난해 분석이 있다. 그 정도로 만족해선 안 된다.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는 그제 1조 원 규모의 전략펀드를 조성한다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문화산업계가 ‘선수’로 힘차게 뛰고 정부는 효과적으로 후원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한류 팬이 10억, 20억 명으로 늘고 전 세계가 한류 아이템으로 노래하고 대화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보폭을 넓혀 달려가야 한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