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동병상련’ 삼성전자와 애플

입력 2024-03-19 14:00수정 2024-03-2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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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연례 개발자회의 ‘GTC 2024’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2019년 이후 5년 만에 대면 행사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1만6000명이 운집해 대형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여느 때처럼 검정색 가죽 재킷을 입은 젠슨 황 CEO는 무대에 오른 후 “이것이 콘서트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엔비디아는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인 ‘B200’을 공개했다. 기존 성능을 훌쩍 뛰어넘는 강력한 AI 칩을 통해 AI 시장에서 입지를 더 굳건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는 AI 시대의 선두 주자다. 뉴욕타임스는 “젠슨 황과 그의 검정색 가죽 재킷이 AI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젠슨 황 CEO의 기조연설을 보면서 애플 창업자 겸 CEO였던 고(故) 스티브잡스가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검은색 터틀넥(목티)와 청바지를 입고 연단에 섰다.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웨스트에서 열린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아이폰’을 첫 공개한 그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IT 업계 최고의 장면으로 꼽힌다. 아이폰은 전 세계인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혁명적 제품이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 등장 이후 갤럭시S 시리즈를 공개하며 애플과 세기의 맞수로 떠올랐다. 두 회사의 7년 간에 걸친 ‘디자인 특허 전쟁’은 전 세계 1등 혁신 기업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대리전 양상이기도 했다.

그만큼 삼성전자와 애플 모두, 서로를 이기면 IT 업계에서 최고 혁신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이른바 ‘초격차’ 기술력으로 전 세계 IT 업계에 자신의 칩을 공급했다. 무서울 게 없었다.

그랬던 두 회사가 최근 AI 열풍 속에서 소외된 느낌이다. 그래픽카드(GPU)만 파는 줄 알았던 엔비디아가 전 세계 AI 칩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AI 반도체 생산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최대 7조 달러(약 9000조 원) 조달 계획을 던졌다.

빅테크 터줏대감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구글, 메타, 인텔 등도 AI 열풍 속에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어떤가. 애플은 아이폰을 잇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못한 데다, 폐쇄적인 사업 정책이 독이 됐다. 결국 매출 성장세는 정체되면서 제품에 AI를 활용하는 다른 테크 기업에 밀리고 있다.

라덴부르크 탈만 자산운용의 필 블랑카토 CEO는 “애플이 코카콜라와 비슷한 가치주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애플은 아이폰 판매가 부진하고 각종 규제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AI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EU 경쟁당국은 최근 애플이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18억4000만 유로(약 2조68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삼국지’의 저자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올해 1월 페이스북에 “삼성전자는 불과 6~7년 전만 해도 ‘초격차’라는 수식어의 사용권을 독점해도 된다고 자부할 정도로 기술력에서든 원가 경쟁력에서든 반도체 제조업만큼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회사였다. 하지만 AI 반도체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을(乙)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적었다.

언제나 1등을 자신했던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를 따라잡겠다던 삼성전자의 야심도 공염불이 되고 있다. AI칩 생산 경쟁 속에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격차는 지난해 3분기 45.5%포인트(p)에서 4분기 49.9%p로 더 벌어졌다.

삼성과 애플이 최근 주춤하듯이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두 회사는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저력이 있다. 지금의 한발 늦음을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AI 시대, 더 나아가 그 이후를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면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두 회사가 세계 최고 혁신 기업 자리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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