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피해는 여전한 실정이다. 전세보증금을 받으려면 '전세 중도해지 합의서'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이용한 집주인이 이를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2일 본지 취재 결과 전세 보증 사고가 발생한 주택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도리어 돈을 뜯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오피스텔 전세 세입자 A씨는 최근 집주인 측으로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받으려면 350만 원의 돈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A씨의 전세계약은 10개월 가량 남은 상황이지만 집주인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만기 시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업무를 위임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해 HUG 전세보증금 반환 절차를 안내받으라고 연락했다.
하지만 위임을 받은 공인중개사사무소는 전세보증금 반환 절차를 도와주기보다, 집주인을 위한 돈을 요구해왔다.
현재 HUG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받으려면 집주인과 전세 중도해지 합의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합의서 작성을 미룰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이 늦어진다는 점을 노리고, 세입자의 약점을 삼아 갑질을 한 것이다.
집주인 측이 요구한 350만 원은 세입자가 HUG를 통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경우 집주인이 HUG에 내야 하는 이자 중 2개월치 이자 비용을 지원할 돈이었다. 여기에 A씨가 집을 비운 후 새 세입자를 찾기 위한 중개수수료까지 포함됐다.
HUG가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지불(대위변제)하면, 이후 집주인에게 채무를 상환하라며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채무상환이 미뤄지는 동안 집주인은 지연에 따른 배상금을 내야 한다. 이자는 연 5%다.
A씨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해당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합의서 작성을 위해 임대인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면서 "이 같은 사실을 안내하고 있는 것은 맞고, 임대인과 이야기해 (세입자에게 임대인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고 답했다.
원칙적으로 A씨는 해당 집주인에게 전세 중도해지 합의서를 받기 위해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A씨는 임대인에게 돈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나중에는 합의서를 받기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만기가 6개월도 더 넘게 남아 있는데, 그 사이에 집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며 "집주인 마음이 바뀌어 합의서를 안 써주겠다고 나오면 세입자로서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전세보증금을 받더라도 반환이 늦어지는 것 자체가 세입자에게는 곤란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제때 전세보증금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될 경우, 새 거쳐를 마련하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전세사고 피해자들 대부분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전세사고·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가 악성 임대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교통부도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사례는 불공정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보증금 반환제도를 악용한 불공정 사례에 대해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A씨 집의 임대인과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