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경험하지 않은 영역을 향한 미심쩍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있다.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증시를 부양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자본시장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을지를 두고 시장 주체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 자본시장이 장기간 우상향을 지속한 경험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최근 10년간 코스피는 약 30%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 S&P는 180%, 일본 닛케이는 170% 넘게 뛰었다. 그간 한국 증시는 부문을 불문하고 시장 전반이 상승세를 타기보다, 테마별로 종목만 바꿔가며 주가가 오르내리는 양상을 반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거시적 목표 아래 마련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주 열풍 생성이라는 결과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외국인은 저평가돼 있으면서도 덩치가 큰 종목들을 쓸어 담았다.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이 증시부양에 성공하며 한국도 비슷한 경로로 갈 수 있다고 관측한 셈이다.
반면 국내 기업이나 개인투자자는 가보지 못한 길에 발을 딛는 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미들은 최근 한달간 저PBR주를 6조 원어치 팔고 해외 증시 투자 규모를 늘렸다. 기업으로서는 배당에 부과되는 세금이 부담스러워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뛰어들 유인을 못 느끼는 상황이다.
저평가주에 관심 가져온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동종업계 ‘사장님’들을 만나러 다니기에 바쁘다고 한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그와 만난 조직 수장들은 입을 모아 “밸류업, 진짜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업계 흐름에 빠삭한 위치에 있는 사람마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이 선뜻 안 따라주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주저하는 기업과 투자자를 움직이려면 정부가 한층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해야겠지만, 당장은 인센티브에 힘을 줄 때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 유도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성패를 가를 수 있어서다. 올해 2월 발표된 프로그램 초안은 시장 기대치를 웃돌지 못했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간담회에서도 코스피 상장 대표기업들은 기업과 투자자가 체감할 세제 혜택을 주문했다. 5월로 예정된 최종안 발표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