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집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될까
아파트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를 입력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고 집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눌러 집에 들어가려 했는데, 그때 “누구세요?”라는 전 여자친구의 목소리에 놀라 도망쳐 나왔습니다.
저는 전 여자친구의 집은 물론 다른 주민이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설마 저에게 주거침입죄 적용이 되진 않겠죠?
주인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가면 주거침입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은 열었으나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요? 복도 현관 공동 비밀번호가 설정돼있지 않은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요? 주거침입죄의 성립 요건은 무엇인지, 어떤 범위까지가 범죄 행위인지 김세화 법무법인(유한) 동인 변호사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Q. 주거침입죄는 어떤 경우에 성립하나요?
A. 형법 제319조에 규정된 주거침입죄는 사람이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하거나 이러한 장소에서 퇴거 요구를 받은 후 응하지 않을 때 성립합니다.
여기서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적 지배‧관리관계가 평온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침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법원은 행위가 발생한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Q.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용계단, 복도는 사람이 주거하지 않는 곳이라 괜찮지 않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내부의 엘리베이터, 공용 계단, 복도 등 공용 부분도 그 거주자들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어 주거침입죄의 객체인 ‘사람의 주거’에 포함됩니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공용 부분에 무단으로 침입한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Q. 거주자가 아닌 외부인이 공동주택의 공용 부분에 출입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주거침입죄에 해당할까요?
A. 대법원은 외부인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공동현관에 출입하는 경우를 주거침입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출입문에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거나 외부인 출입통제 표시, 경비원 근무 등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하는 경우, 외부인이 그 사실을 알면서도 거주자나 관리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거주자나 관리인 모르게 공동현관에 출입함으로써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해하는 경우까지 주거침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비밀번호가 설정된 출입문 등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는 상황 속에서 무단으로 진입하면 주거침입에 해당할 여지가 큽니다.
Q. 그렇다면 저는 주거침입죄를 저지른 걸까요?
A. 전 여자친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공동출입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아파트 관리자나 거주자들만 출입이 허용되는 공동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상황으로 보입니다. 전 여자친구는 물론, 같은 동에 거주하는 입주자들에 대해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것입니다.
Q. 만약 전 여자친구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주차장을 거쳐 공동출입문으로 연결되는 구조라면 상황이 달라지나요? 이 구조에 CCTV가 설치돼 있고 벽에 ‘외부차량 주차금지’ 문구만 붙어 있거나, 공동출입문 비밀번호도 설정되지 않았는데 경비원도 없다면 주거침입죄는 아니죠?
A.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비슷한 사건에서 “건물의 거주자들이나 관리자는 CCTV의 설치나 기둥 벽면의 문구를 통해 ‘외부차량의 무단주차금지 외에도 주차장, 이와 연결된 주거공간인 이 사건 건물 일체에 대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한다’는 취지를 대외적으로 표시한 것”이라며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은 주차장을 지나는 과정에서 이 표시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장소라는 점이 전제가 된다면 주거침입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Q. 만약 전 여자친구가 지금은 저의 무단 침입 사실을 모른다거나, 알게 되더라도 나중에 알게 되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요?
A. 성립될 수 있습니다. 행위 당시 거주자의 현실적인 인식이 있어야 주거침입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김세화 법무법인(유한) 동인 변호사
김세화 변호사는 제5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한국거래소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부터 법무법인(유한) 동인의 변호사(송무전략컨설팅팀)로 활동 중입니다. 주로 민·형사 소송과 수사단계 대응, 그리고 노동 및 회생·파산 분야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중대재해처벌법 해설 및 사례’(공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