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칼럼] 면접교섭의 장애물 함께 넘기

입력 2024-04-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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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칼럼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나은이는 왜 면접교섭을 하기 싫어하는 거지?’

서면을 읽을수록 갸우뚱해지고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은이 아빠가 나은이 엄마를 상대로 낸 면접교섭 청구 사건에서 나은이 엄마는 ‘나은이가 면접교섭을 거부한다’는 답변서를 냈습니다. 아이가 면접교섭을 거부한다는 답변은 다른 사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반응이고, 그렇더라도 법원은 그러한 주장의 진위나 당부를 살피며 심리를 해 나갑니다. 서면만 찬찬히 읽어봐도 청구인 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보이거나 상대방 쪽에서 궁색한 이유를 둘러대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이혼 전후로 겪어 온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청구인과 상대방의 갈등의 골이 깊고 어느 한 쪽만 잘못했다 할 수 없이 쌍방이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아 아픔도 깊어진 관계에서 아이를 사이에 놓고 면접교섭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지요. 청구서와 답변서, 그리고 반복해서 주고받는 준비서면의 내용들을 보면, 면접교섭이 진행되지 못하는 위와 같은 원인에 대해 대략 추론 가능하지만 섣불리 판사가 손을 대기 보다는 가사조사관이나 상담위원 등 전문가의 신중한 접근과 섬세한 개입을 통해 관계 조정(調整, adjustment)이 필요한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나은이의 경우는 서면만 봐서는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었어요. 나은이가 초2 때 협의이혼한 부모는 당시 나은이의 친권자 및 양육자를 모로 정하되, 부는 월 100만 원씩의 양육비를 모에게 지급하고 나은이와의 면접교섭은 매주 주말에 하루 또는 1박 2일로 하기로 했습니다. 매달 마지막 주 주말은 쉬기로 하고요. 그리고서 실제로 나은이 아빠는 적지 않은 돈인 월 100만 원씩의 양육비를 꼬박 꼬박 나은이 엄마에게 지급해 왔고, 나은이 엄마도 약속한 면접교섭의 이행에 잘 협조해 주었어요. 그렇게 한 3년 이상 큰 문제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면접교섭이 중단되고 나은이 아빠가 법원에 면접교섭 청구를 하기까지 이른 때는 나은이가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갈 무렵이었어요. 나은 아빠는 여전히 양육비를 성실히 지급하고 있었기에 나은 엄마가 양육비 때문에 면접교섭을 불응할리 없었죠. 게다가 엄마아빠 이혼 이후 나은이는 부모의 협력적 태도 덕분에 아빠와의 관계를 비교적 원만하게 유지해 왔기에 아빠와 사이가 나쁘다거나 갑자기 나빠진다거나 할 별다른 이유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나은이가 면접교섭을 하기 싫어하게 되자, 일단 나은이 아빠는 나은 엄마의 ‘나은이가 가기 싫어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고 혹시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의문을 가졌어요. 예컨대 양육비를 올리려는 게 아닐까, 아니면 혹시 재혼이라도 하려고 선을 그으려는 것일까 등등요. 한편 나은 엄마도 나은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뭔가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했어요. 나은 엄마가 답변서에 ‘어느 때부터인가 나은이가 아빠에게 가지 않겠다고 하여 달래도 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나은이 본인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면접교섭을 못하게 하거나 비협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강제로 아이를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답답합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나은이 엄마와 아빠는 비교적 현명하게 평온한 이혼을 하고 이제 3년 이상 시간도 흘렀는데 새삼 ‘없던 갈등’이 생겨 자칫 서로 힘들고 어려운 양육분쟁 일로에 들어설 판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가사조사관에게 나은이와 그 부모를 보내서 가능한 한 상담 방식으로 그 원인을 잘 파악해 보고 필요한 경우 전문적인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였습니다.

가사조사관은 나은 아빠, 나은 엄마를 따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고 나은이를 만나 기초적인 면담을 해 보더니, 아동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상담위원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나은이를 상담하도록 조정조치를 하였어요(이러한 조정조치는 판사로부터 조정조치명령을 받아서 진행한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 필요한 경우에 그 부와 모도 상담을 하거나 부모교육 또는 면접교섭에 관련된 양육 코칭을 하도록 했고요.

이후 아동 전문 상담위원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사실은 나은이가 거부한 것은 면접교섭이나 아빠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나은이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았고 단지 변화가 필요했던 거였죠.

나은이가 엄마집, 아빠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기 시작한 초2 때는 그저 그래야 하나보다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나은이는 함께 살던 아빠가 이사 나가고 난 어느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해요. 뭔가 가슴이 저미고 좀 슬퍼서 눈물이 났는데, 엄마가 아빠랑은 매주 주말에 만날 거니까 걱정 말라고 말해 줘서 괜찮았대요. 그래서 주말에 아빠 만나러 가고 또 다음 주말에 아빠 만나러 가고, 어떨 때는 하룻밤 자고 오고 또 어떨 때는 아빠가 데리고 놀러 가기도 해서 재밌던 적도 있었대요.

그런데 상담위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나은이가 초2 정도 나이 때에는 부모가 이끄는 대로 순응하면서 면접교섭을 위해 오갔는데, 이제 초6 나이에 사춘기가 오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는 겁니다. 주말에 아빠랑 하루나 이틀 지내면서 함께 하던 것들이 이젠 뭔가 맞지 않거나 나은이 입장에서 불편하거나 번거롭게 된 거죠. 어떤 때는 나은이가 차라리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랑 있고 싶을 때고 있고요. 아빠가 싫지 않고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랑 둘이 있으면 뭔가 전과 달리 어색하거나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었대요. 상담위원은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로서는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은 아빠도 한 1년 전부터 ‘여친’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어느 때인가 주말에 나은이가 아빠집에 왔을 때 아빠의 ‘여친’도 함께 와서 지냈다고 해요. 사실 나은이는 아빠가 ‘여친’을 소개해 주었을 때 ‘아빠가 엄마 아닌 다른 여자와도 만날 수도 있구나’하는 것을 처음 느끼고서 좀 충격을 받았지만, 금방 ‘이혼했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은 했다고 해요. 그런데 딱히 아빠가 ‘여친’과 나은이 사이에 친하도록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 함께 지내다 보니 나은이 입장에서는 ‘그냥 셋이 그렇게 있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다’고 해요. ‘그 분이 잘해주려고 할수록’이라고 했다니, 아마도 아빠와 그 분은 나은이에게 잘해주려고 꽤 애썼음에도 말이죠. 상담위원 말에 의하면, 이 역시 특히 사춘기 접어든 예민한 나이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 상담위원이 보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몇 년간 주말 마다 아빠집에 다니는 생활을 해 온 나은이가 살짝 좀 지친 것도 같다고 했습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은 쉬었다고 하지만, 나은이가 편안하게 생활하는 ‘집’이라기 보다는 뭔가 ‘집’을 떠나 아빠를 만나러 가서 아빠가 마련하거나 준비한 대로 하루나 이틀을 지내고 오는 것이, 이제 자율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나은이 연령에서는 부대끼고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상담위원은, 면접교섭의 시간과 횟수, 방식 등에 있어서 좀 더 나은이의 의견을 반영하여 전반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즉 나은이의 자율성을 늘리고 나은이가 원하는 방식이나 조건을 갖추도록 면접교섭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부와 모, 나은이와 몇 차례 상담 및 의논을 거쳐서 결론적으로, 아빠와 나은이의 면접교섭은 우선 횟수를 한 달에 2회(격주)로 줄이고 숙박도 아빠가 원할 때가 아니라 나은이가 원할 때 하기로 바꾸었어요. 나은이가 친구들과 만나거나 다른 일정이 생길 때는 아빠가 면접교섭 일정을 조정해 주거나 건너뛰고 대신 영상통화를 하는 등 좀 더 유연하게 하기로 했고요. 또한 아빠의 ‘여친’은 원칙적으로 나은이 면접교섭 시간에는 집에 오지 않도록 하고 만일 오게 하고 싶으면 나은이에게 먼저 의견을 물은 후 나은이가 동의할 때만 그러기로 하였죠. 그 외에도 나은이에게 먼저 묻지 않은 채 영화표를 끊거나 놀러갈 곳을 예약하거나 하지 않기로 하였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빠집에 나은이의 방을 독립적으로 하나 만들어 주기로 하였답니다. 전에는 아빠가 서재로 쓰는 방에서 나은이가 잤었는데, 그 방을 온전히 나은이 방으로 만들어 줘서 나은이가 자기 집처럼 언제든 있다 갈 수 있도록, 면접교섭때 할 스케줄이나 특별한 계획이 없이도 나은이가 그냥 편하게 그 시간을 지내다 갈 수 있도록 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은이의 자율성과 의견을 더 존중하여 면접교섭에서의 주도권을 아빠에게서 나은이에게로 점차 옮겨가는 방식으로 바꾸어 가면서, 나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 오해가 풀린 것은 물론이고요. 나은이 아빠는 이와 같은 면접교섭 방법의 변화가 나은이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것임을 이해하고, 오히려 스스로 양육비 액수도 증액해 주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나은이가 커서 양육비가 더 드는 것 역시 당연하니까요.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 of child)을 최우선적으로 고려 받을 아동의 권리에 관한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제14호에 의하면, 아동의 최선의 이익 보장을 위한 절차적 보장책 중에 “시간 지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동이 관련되거나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절차나 과정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 가능한 한 최단 시일 내에 완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그리고 가능한 한, 결정을 내리는 시점은 그 결정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동의 인지도에 부응해서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 내려진 결정은 아동의 발달과 표현능력의 발전에 따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돌봄, 치료, 위탁, 그 밖의 아동 관련 조치는 아동의 시간 지각과 변화하는 역량 및 발달 측면에서 정기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합니다(위 일반논평 제14호 93문단).

어찌 보면 한번 정한 면접교섭이 변화 없이 몇 년씩 간다는 것이 오히려 어불성설이라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고려한다면 말이지요. 나아가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무런 문제없는 관계였을지라도 새롭게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갈등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제 거기에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를 통해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로 가야한다는 사인(sign)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성장도 갈등도 변화도 모두 다 자연스럽고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것이며 삶이 주는 선물임을 깨닫게 해 주는 나은이와 그 부모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임수희 부장판사는…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재직 중이며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면접교섭의 중요성 및 바람직한 방법을 안내하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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