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서포터’ 개념 도입 시급…보호자 위한 정서적 지원책도 마련해야
암 환자의 치료와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정서적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특히, 환자 대 의료진 관계가 아니라 ‘환자 대 환자’ 관계에서 형성하는 유대감이 삶의 질에 큰 영향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4일 국제신장암연합(IKCC)은 인천 아버파크호텔에서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암 환자를 위한 정서적 지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폴란드, 인도, 필리핀 등 전 세계 신장암 환우회 회원들이 참석해 환우회 조직 현황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쌓았다.
암 환자는 진단부터 치료 종결까지 다양한 정서적, 사회적 고통을 경험한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사회로 복귀하기까지 차별과 편견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국립암센터가 치료 후 암 환자의 심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완치된 환자의 90%가 재발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감과 우울증을 경험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정서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에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암을 진단받은 30만284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 의료기관을 찾아 진단을 받은 환자의 비율은 10.4%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피어 서포터(Peer Supporter)’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유은승 고려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동료 의식을 갖고 유대감에 기반을 둬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나누는 것이 피어 서포터의 핵심”이라며 “환자에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환자의 행동 및 생각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관계를 지양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피어 서포터를 양성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유 교수가 개발한 암 환자 간 지지 프로그램 ‘스프링(Spring)’이 대표적이다. 방사선 또는 화학요법 중이거나 치료를 마친 ‘암 생존자’를 대상으로 활동가 교육을 시행한 이후, 현재 투병 중인 동료 환자와 매칭해 소통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스프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우울감이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한 활동가는 “암 환자는 집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투병 중 활동가를 만났던 환자는 “치료를 마무리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활동가로서 다른 환자들을 돕고 싶다”라며 활동 의지를 표했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를 위한 정서적 지지 프로그램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보호자들은 환자와 치료 과정을 함께하면서 일상에 변화를 겪지만, 건강에 이상을 느껴도 적극적으로 치료나 상담을 받지 않는다. 환자가 아닌 자신을 돌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환자의 가족들도 환자 못지않게 굉장한 스트레스를 느끼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서적 지원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IKCC 국제 콘퍼런스가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부터 16일까지 3일간 진행되며, ‘환자와 의료전문가 간 의사소통 강화’, ‘환우회의 가장 관심 높은 토픽’, ‘완화치료를 통한 삶의 질 개선’ 및 ‘가족 및 친구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지원 구축’ 등의 주제로 토론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