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계 내홍 수습 나섰지만…전공의들 “교수들 착취자, 병협은 배신자”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 중인 의사들이 한 목소리로 정부와 협상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비상대책위원회와 회장 당선인 사이의 내부 갈등을 수습했지만, 이 밖에 의대 교수들과 사직 중인 전공의들, 병원 측까지 단일한 의견을 모으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의료계에 통일된 대안을 제시할 것을 거듭 요청하고 있어, 의사들과 정부의 대화가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들이 공통된 의견으로 결집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하기 위한 조건으로 ‘통일된 대안을 제시할 것’을 거듭 요청하고 있지만, 의대 교수 및 전공의들과 병원가 의견을 일치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공통으로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외의 의료정책에 대해서는 각 의사단체의 요구사항이 상이하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의 전공의 착취 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간 전공의들이 비정상적인 장시간 근무와 저임금 등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렸다는 주장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 명령 전면 폐지 등의 7대 요구사항을 발표한 바 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의대 교수 집단에 대한 불신도 표출되고 있다. 이날 사직 전공의 1360명은 박민수 보건복지부(복지부) 제2차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 선배들은 의협을 중심으로 화합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달라”라면서도 “그간 전공의들은 사직까지 하면서 정책에 반대해왔는데, 의대 교수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서 ‘병원으로 돌아오라’는 설득만 한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개인 SNS를 통해 “교수들은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의대 교수들과 기성 의사들은 유감을 드러냈다. 강홍제 원광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자기 지지 세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실망이다”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착취자라는) 어휘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교수들을 비롯한 일부 의사들이 분노하고 불쾌해하는 것에 동의한다”라고 밝혔다.
병원계는 정부와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며 의사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12일 대한병원협회는 제65회 정기총회를 진행하면서 박 차관을 초청해 축사를 들었다. 이를 두고 일부 의사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파와 다를 바 없다’라며 배신감을 표했다.
의협은 조직 내외부의 갈등을 봉합하기에 나섰다. 그간 의협은 비대위의 주도권을 두고 김택우 위원장과 임현택 의협회장 당선인이 대립해 내부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전날 임현택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8차 회의에 참석한 직후 “그동안 있었던 오해와 서운했던 점에 대해 김택우 위원장과 충분히 의견교환을 통해 잘 풀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대위 위원들도 다 같이 박수로 격려해줬다”라며 “남은 기간 모든 직역이 잘 협력해 이 난국을 잘 풀어가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들의 대립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표현되는 과정’이라며 갈등을 불식시켰다.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다양한 직군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으며 우리가 경청해야 할 부분”이라며 “서로 마음을 맞춰 단일대오로 가는 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의료계와 갈등을 풀어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날인 지난 9일부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중단하고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총선 이후 이날 브리핑을 재개하면서 향후 의료개혁의 방향성을 밝힐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마저도 이유 없이 돌연 취소했다.